

"나는 자오모성이야.
'자오'는 내 성이고, '모'는 침묵이란 뜻이고,
'성'은 악기 이름이지. 옛 시에서 따왔대.
'쉬즈모'의 시에서 말이야.

"고요한 이별의 연주 소리에
이 밤 케임브리지도 침묵하네"
기억하기 쉽지?
대학시절 이천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 자오모성은 자신의 존재를 이천에게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알려주면서 위와 같은 대사를 남긴다.
이 장면에서 자오모성이 인용한 시는 드라마 <마이 선샤인>의 중국 방영 제목 '하이생소묵'을 탄생시킨 중요한 시이면서, 드라마 속 두 남녀 주인공이 오해를 풀고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다시금 회복하게 되는 중요한 메타포로 활용된다.
<마이 선샤인>의 메타포로 활용된 이 시는 중국의 근대시인이자 가장 로맨틱한 시인으로 알려진 '쉬즈모(徐志摩, 1897년 ~ 1931년)의 대표작 '재별강교(再別康橋)'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한 시로 전해져 있다.

안녕, 캠브리지여! - 쉬즈모(徐志摩, 서지마)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하얀 손 흔들면서
서녘 하늘과 구름에 작별하리라
개울가 금빛 버들은
황혼의 새악시어라
물결 속에 드리운 고운 그림자
내 마음 속에 물결이 이네.
향그런 여울 위에 갓 핀 풀잎이
유유히 물 속에서 손짓을 하고
케임브리지 부드러운 물결에 흘러
나는 기꺼이 한 그루 수초가 되리니!
느릅나무 그늘 아래 작은 호수
샘이 아닌 하늘의 무지개러니
부평초 사이로 곱게 내려앉아
오색 영롱한 꿈속에 숨어드나니.
꿈을 찾으라! 기다란 삿대를 끌고
푸르디 푸른 곳을 향해 저어가리니
한 배 가득히 빛나는 별들을 싣고
휘황한 별무늬 속에서 노래하리라.
하지만 불러도 노래는 터지지 않아
서러운 이별의 피리소리에
벌레도 목이 메어 노래 삼킬 때
침묵만이 이 밤 케임브리지를 흘러가네!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나그네 옷소매를 휘날리면서
한 조각 구름마저 함께 가진 않으리라.
시의 제목인 '재별강교(再別康橋)'는 '다시 케임브리지와 이별하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시인 쉬즈모는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했었고, 이때 영미시의 매력에 빠져 중국으로 돌아와 봉건제도를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와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신월파(新月派)를 조직하여 중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다.
특히 쉬즈모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그의 인생을 사로잡았던 세 명의 여인이 거론되는데, 첫 번째는 그의 나이 19세에 결혼했던 아내 '장여우이'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써 오빠 '장공권'과 쉬즈모 부모의 인연으로 결혼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곧바로 영국 유학 길에 올랐지만,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영국 유학시절 쉬즈모가 '린후이인'이라는 다른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늪에 빠져버린 쉬즈모는 임신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아내를 이국 땅에 홀로 버려둔 채 가출을 하기까지 한다.
쉬즈모를 사랑에 미치게 만든 여인 '린후이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재녀(재주가 많은 여성)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유명 건축가이자, 뛰어난 그림 실력의 소유자였으며, 중국 최고의 문학가인 후스가 극찬한 신월파 시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학파 신여성으로서 여러 나라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아마도 쉬즈모는 린후이인의 이런 지적 매력에 빠졌던 듯 하다. 쉬즈모는 린후이인과 만남 직후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린후이인은 당시 중국의 영향력있는 정치가 '량치차오'의 아들 '량쓰청'과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쉬즈모는 이를 알면서도 린후이인에게 구애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와의 이혼에 성공한 쉬즈모는 린후이인과 결혼을 하려하지만, 이미 린후이인은 량쓰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결혼을 한다. 쉬즈모는 크게 상심했고 한동안 폐인의 삶을 살았다.
사랑을 잃고 술로 괴로움을 달래던 쉬즈모 앞에 등장한 세번째 여자는 '류사오만'이었다. 류사오만은 중국 사교계의 꽃이자 연예인만큼이나 화려하고 유명했던 인물로, 쉬즈모의 친구 '왕겅'의 부인이었다.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한 류사오만은 군인이었던 남편 왕겅과의 결혼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때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는 로맨티스트 쉬즈모의 등장은 그녀의 정열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류사오만은 쉬즈모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 왕겅과 이혼했고, 이들의 불륜과 결혼은 당시 신문의 1면을 차지할만큼 화제였다고 한다.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집안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고, 시를 팔아 연명하는 가난한 삶이 계속됐다. 하지만 가정경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류사오만의 화려한 삶은 계속되어 부부간에는 다툼이 잦았다.
류사오만과의 결혼생활이 힘겨워지자 쉬즈모는 자연스럽게 '린후이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라도 린후이인을 보기 위해 사교 모임을 찾기도 했다. 이런 쉬즈모의 행동에 류사오만은 질투에 휩싸였고, 마침내 모임에서 돌아온 쉬즈모를 폭행하기에까지 이르른다. 류사오만의 행동을 견딜 수 없었던 쉬즈모는 그날 밤 집을 나왔고, 비행기를 타고 베이핑으로 가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쉬즈모의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식까지 치른 사람은 다름 아닌 첫번째 부인 '장여우이'다. 그녀는 쉬즈모로 인해 중국 최초의 공식 '이혼녀'가 되었지만, 이혼을 계기로 홀로서기에 성공하며 훗날 중국 상업은행의 총재가 되어 부와 명예를 얻게 됐다.
"쉬즈모를 사랑했나?"라는 손자들의 물음에 장여우이는 "내가 쉬즈모의 가족을 돌본 것이 사랑이라면 내가 쉬즈모를 사랑했던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쉬즈모가 만난 여자들 중에는 내가 쉬즈모를 가장 사랑했다"는 말로 쉬즈모에 대한 진심을 밝혔다.

쉬즈모의 파란만장했던 연애사는 지난 2000년 대만에서 <인간사월천(人間四月天)>이라는 제목의 TV드라마로 방영됐고, 쉬즈모는 아직까지도 사랑에 관한한 중국에서 가장 로맨틱한 시인으로 회자되며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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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연예 취재팀 | 사진출처 바이두,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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