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사 54주년 특별기획드라마 <화정>과 함께 하는 조선시대 역사 읽기. 열 번째는 조선시대의 의복에 대해 살펴봅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복식 형태는 북방계 기마 유목 민족의 옷차림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치마 저고리나 바지 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신라 진덕여왕 2년(648년) 당나라의 단령(團領)을 관복으로 입기 시작한 후 특히나 관리들의 복식은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복식제도를 따랐다.
유교사상을 통치의 기반으로 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구별된 복식제도를 정했으며 이를 세분화하여 법전과 예전에 밝히고 시행하였다. 특히 당시에는 외투만으로 신분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일반 백성은 양반이 입는 도포나 큰 창옷을 입을 수 없었고 양반들이 도포 아래에 입는 작은 창옷을 외투로 입을 수 있었다. 도포나 큰 창옷은 품이 크고 소매가 매우 넓었으며 겉에 색실술띠를 매어 신분을 구분하였다. 당상관은 붉은색 계통의 술띠, 당하관은 남색이나 녹색 등의 술띠, 노인은 회색이나 흰색의 술띠를 매었다. 이후 조선 사회가 이어지는 500여 년동안 소매통이나 저고리의 길이 등 복식도 시기와 유행에 따른 많은 변화를 겪는다.
![]() |
| 조선시대 의복 ©문화재청 |
![]() |
| 삼회장저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여자 저고리로 깃, 소매, 끝동, 곁마기에 다른색 감을 대었고 도련을 당의처럼 둥글게 하였다. |
![]() |
| 단원 신윤복의 '주유청강' ©공유마당, 한국저작권위원회 강에서 풍류를 즐기는 젋은 선비들과 기생들을 그린 이 풍속화를 통해 18세기 당시 남자들이 입었던 다양한 포와 여인들의 차림새(몸에 꼭 맞는 짧은 길이의 저고리와 항아리형의 풍성한 치마)를 살펴볼 수 있다. |
특히 드라마 <화정>에서는 다양한 궁중의 복식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그 화려함과 의미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화정> 속 광해군의 의상 변화를 통해 조선시대 왕의 의복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조선시대 국왕의 시무복(視務服)이었던 '곤룡포'는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왕은 강력한 생명력과 양기의 충만함을 의미하는 붉은 계통의 곤룡포를 입으며 익선관과 옥대, 검정색의 녹비화를 함께 착용했다. 곤룡포의 앞과 뒤, 양 어깨에 부착되어 있는 보(補)는 용의 발톱수에 따라 오조룡(五爪龍), 사조룡(四爪龍), 삼조룡(三爪龍)으로 구별하여, 왕과 왕비는 오조룡보, 왕세자와 세자빈은 사조룡보, 왕세손은 삼조룡보를 사용하였다.
왕이 쓰던 모자라 할 수 있는 '익선관'은 모자 뒤쪽에 매미 날개 모양을 장식했다 하여 '날개 익(翼)'과 '매미 선(蟬)'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매미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 오덕(文, 淸, 濂, 儉, 信)을 모두 갖추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왕이 정무를 볼 때마다 이 의미를 기억하며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선조의 기일과 청명(淸明)에 제를 올릴 때 광해군이 입었던 옷은 '면복(冕服)'이라 한다. 면복은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국왕이 왕위에 오를 때나 종묘제례, 정초의 하례식 등 주요 의식이 있을 때 착용하던 옷을 뜻하며,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으로 이루어진다. 조선 태조 이후 면복은 9류면 9장복을 착용하였는데, 9류면이란 면류관의 9개의 구슬끈이고 9장복은 산, 용, 화충, 종이, 조, 분미, 화, 보, 불 등 총 9가지의 장문(章紋)이 새겨진 것을 의미한다. 고려말 공민왕 때와 고종의 황제즉위식 후에는 중국 황제와 동격으로 12류면 12장복을 착용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 |
| 구장복 ©문화재청 조선시대 왕이 갖춰입던 옷이다. 황제는 십이장복, 왕이나 황태자는 구장복, 왕세자는 칠장복을 입었다. |

겉은 검은색이며 안은 붉은 색인 '면류관'은 가장 화려한 관 중의 하나로 왕의 신분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앞이 뒤보다 낮아 '면(冕)하다'는 특징에서 '면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면 앞에 유를 늘어뜨리는 것에는 왕의 눈이 너무 밝음을 경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때 발에 신는 버선과 신은 홍색으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음양관계를 고려해 의복을 맞추어 입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행차에 나서거나, 군에 관련된 일이 있을 때 왕은 검은 갓에 다홍색 철릭을 입었다. 철릭은 본래 조선시대 문무관이 평상복으로 입던 겉옷으로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으며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매는 경우에 따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고, 치마 옆에 트임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 특별히 왕의 경우에는 갓에 옥 장식으로 멋을 더하고, 철릭에는 금색 찬란한 흉배를 더해 문관이나 무관들의 복장과 차별화시켰다.
![]() |
| 광해군 옷(중치막) ©문화재청 |
![]() |
| 광해군 옷(안섶명문) ©문화재청 옷의 안자락에는 '을해생조선국왕수만세(乙亥生朝鮮國王壽萬歲)'라는 글씨로 광해군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다. |
정사(政事)를 마친 왕은 양반들이 일반적으로 집안에서 입던 옷과 유사한 옷을 평상복으로 입었다. 보통 여가는 독서와 명상, 저술활동, 투호와 격구, 사냥, 예술 등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때와 장소에 맞게 예를 갖춘 조선의 의복은 과거에는 지존의 위엄을 드높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이르는 왕위 변천사를 다룰 <화정>에서 각 왕들의 다른 느낌을 또 어떤 식으로 재현할 것인지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보너스: <화정> 속에서 가장 옷을 많이 갈아 입은 사람은?

정답: 이이첨
극 중 직장(종7품)-병조정랑(정5품)-대사헌(종2품)-예조판서(정2품)-병조판서(정2품)까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이이첨이 <화정> 속 숨은 패션왕으로 선발되었다.
이 기사는 공공누리, 공유마당,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문화재청에서 개방한 공공저작물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iMBC연예 김은별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등을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