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를 위해서라면 말 한마디로 강자와 약자의 위치마저도 거뜬히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냉혈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차가움을 지닌 김석주를 연기하는 배우 김명민의 연기력에 대해 시청자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배우 김명민의 사실적인 연기력 때문일까? 그가 그려내는 김석주는 드라마 속 캐릭터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실재하고 있는 인물 같다. 혹시 정말 실제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있다면 드라마 작업에 관여하고 있겠지? 혹시 드라마 자문 변호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과 김석주 탄생의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개과천선>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이동수’ 변호사를 직접 만났다.
회의실로 들어오는 그의 얼굴을 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김석주는 어디에?”. 날카로운 눈빛과 차가운 분위기의 김석주 변호사를 예상했던 우리 앞에는 동글동글한 얼굴과 편안한 미소, 그리고 차분한 말투의 이동수 변호사가 앉아있었다.
- 어떤 계기로 드라마 <개과천선>과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제작사인 드라마하우스의 박준서 CP와 인연이 있었어요. 예전에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만들 당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이후 <개과천선> 작업을 하게 되면서 최희라 작가님께서 로펌 변호사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셔서 소개를 받게 됐습니다.
- 최희라 작가는 <골든타임> 때도 병원에 상주하면서 사실적인 상황을 그리기로 유명한데.
맞아요. 작가님이 되게 꼼꼼하시고 드라마가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시더군요. 처음에 작가님이 제 사무실에 오셔서 “구석에 자리 하나 만들어서 여기 2주만 있으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웃음) 제가 하는 일들을 직접 보시고, 또 따라 다니고 싶다고 하셨죠. 업무상 고객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작가님과 굉장히 많은 인터뷰를 했어요. 제가 겪었던 사례들 위주로 설명을 해드리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면서 작가님 집필 중에는 전화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그렇게 초고가 완성되면 또 현실과 동떨어지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고 수정작업을 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어요.
-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겠네요. 변호사도 드라마를 많이 보나요?
물론이죠!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저 드라마 굉장히 좋아해요. 미드 <앨리 맥빌>나 <호스티지>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게임이나 영화도 좋아하죠. 작가님도 이런 변호사는 처음 봤다고 하시던데요?(웃음) 변호사란 직업적으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그게 드라마 보는 일인 것 같아요. 업무가 많아서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지만, 잠을 줄이면 가능하죠.(웃음) 잠을 안 잘 수 있는 약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요. 일도 일이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대본 작업을 하는 것도 그래요. 대본을 보면 머리 속에 장면들이 막 상상이 되더라고요. 그런 작업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 대본 작업 말고 촬영 현장에 직접 나가보신 적도 있나요?
1회에서 나온 일제 강제징용사건의 법정씬을 촬영할 때 처음으로 촬영장이라는 곳에 가봤어요. 판사나 변호사들의 자리 위치라던지 재판장에서 쓰는 용어들을 실제에 가까우면서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현장에서 조언을 해드렸죠.
일제 강제징용사건 법정씬은 밤 8시부터 양주 세트장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법정 장면을 촬영한 게 새벽 1시나 되어서였어요. 처음 몇 시간은 새로운 경험이어서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조금 지나니까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여러 번 찍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정말 힘들더군요. 특히 단역 배우들은 자신의 촬영분을 찍고 가면 그만이지만,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현장에 있어야 하니 정말 힘들겠더라구요.
또 놀란 것은 그날이 강제징용사건 장면이라 노인 보조출연자분들이 많이 오셨었는데, 자신들의 촬영 순서가 될 때까지 불평 없이 기다리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또 극중 주요인물이 아닌 불과 한 컷 잡히는 보조출연자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이 시작되자 단 한번에 오케이를 얻어낼 정도로 연기를 잘 하셔서 놀랐어요.
- 그 장면에서 김명민의 속사포 변론 연기가 화제가 됐었죠? 그날 김명민은 어땠나요?
사실 드라마 시작 전에 여러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거론됐었어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김명민이 낙점되기 전까지 저는 변호사를 연기하는 김명민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고 김명민의 연기를 직접 보고나니 우리나라에서 변호사 역할을 제일 잘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과연 김명민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었죠. 김명민은 목소리 자체가 굉장히 논리적이에요. 김상중씨 역시 비슷한데,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느낌은 안 나왔을 거예요.
특히 그날 김명민은 꽤 긴 대사를 소화했어야 했어요. 대사가 법정 용어라 어렵기도 했지만 혼자 꽤 긴 대사를 한 컷에 담았어야 했으니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날 김명민이 변론하는 연기를 지켜보다가 문득 그가 대사를 외워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고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연습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또 정말 수없이 연습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리얼함이었죠. 실제 김명민 같은 변호사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아마도 재판 승소 확률도 매우 높을 거예요.
김석주처럼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적은 없어요.(웃음)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경험은 있죠. 소송 변호사로 일하면서 한계를 느꼈던 적이 있어요. 소송 사건의 경우 최종 결정자가 판사이기 때문에 판사의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어요. 제 논리가 판사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아서 판결이 달라지는 경우,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언젠가 일반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A가 이기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판사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를 입증할 법적 논리와 증거가 부족해서 굉장히 어려웠던 사건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 사건에 대해 밤새 연구하고 리서치를 해서 논리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법정에서 그 논리를 판사 앞에 제시하자 판사도 제 논리를 인정했고, 결국 A가 이기는 판결을 얻게 됐죠. 그때 깨달았어요, 재판을 끌고 가는 건 결국 변호사라는 걸. 그리고 오랫동안 느꼈던 소송 변호사의 한계에 대한 생각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조금은 특이한 변호사로서 추천해줄 만한 법정 드라마나 영화가 있나요?
산드라 블록과 사무엘 L 잭슨이 주연한 영화 <타임 투 킬>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마을에 살던 한 흑인 주인공이 성폭행 사건으로 딸을 잃고 딸을 죽인 범인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풀려나려 하자 총을 가지고 법정으로 찾아와 범인을 직접 쏘아 죽여요. 이때 총을 쏜 흑인 아버지는 과연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해 재판을 하는 내용인데요, 무엇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김석주만큼이나 반전 있었던 이동수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재미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24시간이 모자란 이동수 변호사는 드라마 <개과천선>이 끝날 때까지 ‘변호사가 궁금해’ 코너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변호사들의 세계에 대해 들려주실 예정이다.
이 동 수 변호사
現 법무법인 태평양 금융소송팀 구성원 변호사,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제30기 사법연수원 수료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부동산학(MRED) 석사
※ 현재 MBC 수목미니시리즈 <개과천선>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現 법무법인 태평양 금융소송팀 구성원 변호사,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제30기 사법연수원 수료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부동산학(MRED) 석사
※ 현재 MBC 수목미니시리즈 <개과천선>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iMBC연예 김미영 | 사진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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