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곡의 역사는 곧 표현의 자유의 역사와 맞닿는다. 독재정권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부터 창법 저속이나 수준 미달 등의 하찮은 이유에 이르기까지. 그늘에서 향유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지금은 해금된 20개의 금지곡 이야기를 통해 이 우습고도 씁쓸한 대중가요 심의의 역사를 뒤돌아본다. 강상준, 김민주, 이민재 기자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체제 대항적 기치를 앞세웠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현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 음반사전심의제도의 철퇴를 맞은 곡. 서태지와 아이들 측은 사전심의제도에 대항하는 의미로 4집 앨범에 수록된 ‘시대유감’의 보컬 부분을 전부 들어낸 후 연주곡만을 수록했다. 이후 1996년 6월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기념한 ‘시대유감’의 무삭제 버전 싱글앨범을 선보이면서 음악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를 상정했던 역사적인 곡이 마침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양희은 ‘아침 이슬’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금지곡이라는 낙인이 찍힌 대표적인 저항가요 ‘아침 이슬’은 애잔한 가사 속에 뜨거운 저항정신과 민초들의 열망을 고스란히 담은 곡이다. KBS1 <콘서트 7080>에서 7080세대가 뽑은 불후의 명곡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이 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 이르기까지 “한낮의 찌는 더위”를 감내하며 “거친 광야”를 갈망하는 정신을 오늘날까지 꿋꿋이 이어 가고 있다.
신중현 ‘미인’

표면상 퇴폐와 저속을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신중현의 ‘미인’은 정권 탄압에 의해 예술인으로서 좌초당한 록의 대부 신중현의 모진 인생을 대변하는 곡이기도 하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언뜻 전혀 문제없을 것 같은 가사는 민중들 사이에서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개사되면서 박정희 정권 연임을 향한 은밀한 야유를 대신했다. ‘미인’이 무슨 죄란 말인가.
Queen ‘Bohemian Rhapsody’
영국 록 그룹 퀸(Queen)의 대표곡 ‘Bohemian Rhapsody’는 마치 오페라 같은 다양한 서사구조와 중층적인 보컬을 조합시키며 그 어떤 음악보다 선구적인 대중음악임을 자처했던 곡이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나라에선 “Mama, just killed a man” 등의 살인을 연상시키는 가사가 문제시되어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니. 그러나 세계 록의 역사,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이 명곡은 당시 해적판으로 두루두루 유통되며 음악을 갈망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부응했다.
송창식 ‘고래사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허무주의를 조장한다며 슬픈 것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던 시절도 있었다. 동해바다로 떠나기를 종용하는 이 곡에는 민중들의 설움과 지친 기색이 역력하기에 김수철, 안성기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암울한 시대상을 한껏 반영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가사부적격을 이유로 얼마 전까지도 방송금지곡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직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의 일면을 꼬집는 곡이다. 지구에 사는 우리를 지배하는 ‘그들’이란 다름 아닌 돈. 여전히 “모두가 돈을 만들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사회의 모습은 변함없건만 이 부조리한 일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밝은 사회 창달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다면 어쨌든 금지시켜야 했으리라.
이미자 ‘동백아가씨’
올해로 노래 인생 40년을 맞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곡 발표 후 35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했지만 1965년 방송금지곡으로 묶인다. 곡 전개가 일본 대중가요 엔카를 연상시켜 왜색이 짙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 하지만 친일의 약점을 지우기 위해 금지를 명한 통치자는 금지 사실을 모른 채 청와대 만찬에서 직접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니, 방송금지곡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추자 ‘거짓말이야’ 
1970년대 한국 최초의 댄스가수로 활약하며 우울한 대중의 감성을 폭발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한 가수 김추자. 그녀의 대표곡 ‘거짓말이야’는 1975년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금지곡으로 묶인다. 하지만 그 이면은 ‘거짓말이야’라는 제목에서부터 유신정권을 향한 부정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느껴졌다는 것. 하긴, 전혀 정치적 의도 없이 만든 곡도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되던 시대였으니.
정광태 ‘독도는 우리 땅’ 
1983년 7월부터 11월까지 방송금지곡이었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1982년 일본의 중등교과서 한일과거사 왜곡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정부의 반일감정 확산 방지 목적에서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 1983년 정광태 씨의 문공부차관 대담 요청으로 해금된 이래 30여 년 가까이 대한민국 최고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1980년대 들국화 1집 수록곡 ‘그것만이 내 세상’이 방송금지된 이유는 창법과 가사 전달이 수준 미달이라는 것.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중 1위로 손꼽히는 들국화 1집 대표곡이 수준 미달로 방송금지되던 시절도 있었다. 가장 선구적으로 록 장르의 진정성에 다가간 이 노래가 당시의 통치자들에게는 이해 불가였던 모양.
이장희 ‘그건 너’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인 이장희의 대표곡 ‘그건 너’는 1975년 1차 가요정화운동 때 금지곡으로 분류된다. 가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건 너’라는 구절이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위라는 것이 금지 이유였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구절에 뜨끔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 듯.
조용필 ‘나의 노래’
1985년에 발표된 조용필 7집 수록곡 ‘나의 노래’는 변사조의 가사가 천박하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조치를 당한다. 하지만 이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조용필이 음악 인생 40년을 맞은 오늘날까지 리사이틀 때마다 ‘나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대를 앞서 나간 감성의 노래였지 싶다.
김민기 ‘늙은 군인의 노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 청춘” 병영에서 구전되던 김민기의 이 노래는 양희은이 앨범에 수록 발표한 1978년에 군의 기강해이와 사기저하를 이유로 방송금지되었다. 하지만 ‘늙은 군인의 노래’는 김민기가 군복무 시절 한 퇴역상사의 30년 군인인생을 기념하기 위해 군의 요청으로 만들었다 하니,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쿨 ‘애상’
심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 것 같은 명랑발랄 혼성 그룹 쿨, 그들 역시 방송금지를 당한 전력이 있다. 남자친구가 많은 애인에 대한 남자의 푸념이 담긴 곡 ‘애상’의 죄목은 다름 아닌 ‘외설, 퇴폐, 불륜’. 2008년 심의해제 조치가 있을 때까지 무려 10년간 KBS의 전파를 탈 수 없었는데 경쾌한 멜로디와 모던한 가사를 놓고 보자면 다소 억지스러운 올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토록 쿨하지 못한 이유로 황당하게 낙인찍힌 주홍글자에도 불구하고 ‘애상’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쿨의 불후의 명곡 리스트를 당당히 꿰찼다.
박명수 ‘바다의 왕자’
1인자 유재석의 말을 빌리자면 ‘바다의 왕자’는 주인을 잘못 만나 망한 노래였다. 하지만 무명의 설움을 딛고 ‘거성’으로 등극한 박명수와 고락을 함께하며 <무한도전>의 행사 대표곡으로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다. ‘찮은이형’처럼 사연 많은 이 곡은 발표 당시 저속한 표현으로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는데 2절의 첫 부분에 나오는 “세 겹 뱃살 접힌 아줌마”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박명수는 당시 “저기 뚱뚱하신 아줌마”로 노랫말을 바꿔 방송 활동을 했으나 맛깔스런 표현은 다소 풀이 죽은 게 분명.
심형래 ‘루돌프 사슴코’ 
바보 연기의 달인이자 영화 <디 워>의 수장 심형래는 캐럴 음반으로 스타 굴욕의 포문을 열었다. 영구 버전의 ‘징글벨’로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캐럴 음반에 수록된 ‘루돌프 사슴코’는 ‘가창력 부족’이라는 냉정한 이유로 방송불가를 선고받았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개그맨들의 앨범 발매가 대유행이었는데, 심형래가 자신의 캐릭터대로 편곡하여 제멋대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럼에도 심형래의 앨범은 ‘코믹 캐럴 음반’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어린이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에픽하이 ‘뚜뚜루’ 
에픽하이 2집에 수록된 ‘뚜뚜루’는 교통법규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방송금지를 당했다. “시속 200km로 폭주”라는 가사가 과속운전을 조장한다는 황당무계한 판결을 받아 든 에픽하이는 ‘시속 20km’로 바꿔 부르며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에 대해 귀여운 반항을 하기도 했다. ‘뚜뚜루’에 대한 금지곡 처분은 실소를 유발할 정도의 어이없는 사유로 당시 누리꾼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왁스 ‘머니’
왁스가 2001년 발표해 여전히 노래방 애창곡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댄스곡 ‘머니’는 황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방송금지의 직격탄을 맞았다. 얼핏 들으면 이 곡은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잣대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사실 돈보다는 순수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어서 금지곡 결정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임창정 ‘소주 한 잔’
배우 겸 가수인 임창정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애절한 가사가 돋보이는 ‘소주 한 잔’은 술의 종류인 ‘소주’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판결을 받아 한때 발이 묶여 있기도 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발라드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음주를 유발했을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어른들의 지나친 오지랖이 빚어낸 코미디임은 분명하다.
윤종신 ‘팥빙수’
시원한 빙수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코믹하고 친절하게 소개하는 예능 늦둥이 윤종신의 ‘팥빙수’는 가사 한 소절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 팥빙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부르는 중반부의 “열라 좋아”라는 표현이 비속어에 해당했기 때문. 이 시절까지만 해도 아티스트였던 윤종신은 이러한 표현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껴 예능계로 전향해 유독 노랫말에만 엄격히 적용되던 심의의 칼날을 벗어났다. 최근엔 깐죽거림과 독설의 갑옷을 입고 시청자들에게 신개념 웃음을 선사하고 있으니 ‘팥빙수’의 금지판결은 오히려 그에게 득이 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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