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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천재 그리고 록스타 - 신해철과의 쾌변 인터뷰

2009-01-05 11:58
독재자, 천재 그리고 록스타 - 신해철과의 쾌변 인터뷰

신해철은 바쁘다. 책을 냈고, 뮤지컬배우가 됐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을 몇 개씩 진행했고, 시사토론에서 한국사회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그리고 4년 만에 넥스트 신보를 내고 무기한 전국 투어에 들어갔다. 도대체 이 많은 걸 어떻게 하냐고? 그는 오히려 여유롭다. 데뷔 20년차 음악인이자, 장르를 안 가리는 방송인으로 그리고 마왕으로. 신랄한 독설과 걸쭉한 농담 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 신해철’의 진심. 차마 글로 표현 못할 비속어와 욕설은 순화시켰음을 밝힌다. 정미래 기자 | 사진 휴먼엔터테인먼트






 


자녀가 둘이다. 아이가 생긴 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미치나?

아무런 영향을 안 미친다. 음악과 아이는 별개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변화’로 받아들인다. 아이가 생기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세상을 알았다,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로 인해 생기는 변화가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사회에 대한 순응, 이제 자식도 생겼는데 몸 사려야지, 이제 정말 돈 벌어야겠구나, 그런 식의 변화는 그다지 반가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 사십이 넘어서 아이가 둘 생겼는데, 앞으로 뭘 더 깨닫고 얼마나 바뀔 수 있겠나? 물론 아이들이 나에게 확신을 준 건 맞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옳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들을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이들을 한국의 미친 교육 현실 속에서 기르지 않겠다는 것, 아버지인 내가 매를 안 드는데 다른 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생각이 더 굳어진 것뿐이지 별로 바뀐 건 없다. 물론 딸내미 때문에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아이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을 보며 너그러운 모습으로 있다가 다시 책상으로 가서 ‘빈곤과 절망이 결혼을 하매 그들 사이에 증오를 낳으사 그가 뿜어대는 독한 연기 속에’(6집 ‘증오의 제국’) 이런 가사를 쓴다. 아이들을 위해서.(웃음)

 


넥스트 6집 앨범 <666 Trilogy>를 3부작으로 진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요즘 음악 환경이 이렇게 된 이상 앨범 하나 분량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낼 이유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청취자들을 참여시켜 같이 즐기게 해주고 싶은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청취자들은 완성된 앨범이라는 최종 결과물만 즐기게 되지 않나. 앨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동참하면서 기대감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재미가 아닐까. <666 Trilogy Part I> CD를 보면 역사상 가장 ‘허접’한 속지를 볼 수 있다. CD 구입한 사람들이 처음에 굉장히 당황했다고 하더라. 설마 저게 정식 표지일 줄은 몰랐다며. Part I의 저런 엉성한 스케치들이 5월경 발매될 Part Ⅱ가 나오면서 조금 더 정교한 그림으로 바뀌고, Part Ⅲ가 되면 완성된 작품이 된다. 세 파트가 합쳐지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CD 케이스의 옆면도 세 개를 다 이어 붙여야 완성된 글자가 보이도록 만들었다.




3부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현실과 맞닿아 있는 미래. 오늘에 대한 내일은 내일에 있어서의 오늘이 될 것이기 때문에. 사이버 펑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SF 공상과학 장르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종으로 횡으로 맞춰 봤을 때 전부 현재 이야기로 변하기도 하고 미래 이야기로 변하기도 한다.

 


‘Cyber Budha Company LTD.’는 노래가 진행되다가 느닷없이 끝나 버린다. 그렇게 한 이유는?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 상황에서 네트워크 밖으로 강제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Cyber Budha Company LTD.’ 같은 경우 가사를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웃음)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건가?

없는데 레코드 매장이나 이런 데서 ‘개판 5분전 공중 해적단 Part II’를 타이틀로 정한 모양이다. 자기들끼리.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웃음)

 






록스타의 길




꽤 장황한 음악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번 6집의 첫 번째 파트는 굉장히 대중적이고 듣기 수월한 음악이더라.

그렇지만 그 수월한 수준의 음악적 접근조차 아무도 안 하는 시대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는 모노크롬 때 했는데, 무난해 보이는 리듬과 음계 속에서 최고의 효율을 가진 그래프를 찾아낸다 해도 결국 현재 존재하는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넥스트란 밴드는 혼성모방을 통해서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일관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난해하고 복잡한 프레이즈들로 귀를 압박하기보다는 선명하고 또렷한 그리고 쉬워 보이는 멜로디의 결합들을 가볍지 않은 형태로 품위를 갖춰서 만들어 내는 데에 우리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특별히 영향 받은 뮤지션이 있나?

우리가 모델로 삼고 연구한 팀은 캔자스다. 어느 파트를 뚝 잘라서 들어 봐도 선명한 멜로디와 또렷한 라인의 귀에 쏙쏙 박히는 훌륭한 멜로디들인데 그런 것으로 3분짜리 노래가 아니라 10분짜리 서사적인 구성을 만들어 낸다. 서사적인 구조의 대곡을 만드는 데 있어서 꼭 난해하고 아방한 프레이즈가 필요한 건 아니다. 거북한 멜로디로 자기도취에 빠져서 우쭐거릴 필요는 없다. 먼저 음악을 했던 사람들에게 물려받아서 정당한 소유권이 있는 유산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이 시대에 차라리 더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Part I 수록곡을 들어 보면 어디서 많이 듣던 프레이즈들이 자주 나온다. 어디서 듣던 것들을 피하기 위한 작업들을 고통스럽게 하며 4년 반의 세월을 보냈는데, 어째서 왜 피해 가야 하느냐는 생각에 봉착하게 됐다. 결국은 결벽증과 자존심이 창작력을 소진시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거다. 어떤 뮤지션이 선보였던 음악이라 해도 그것이 좀 더 발전적인 형태를 보인다면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번 앨범에 수록된 다섯 곡 중에서 가장 고민하면서 만든 것은?

별로 고민 안 했다. 모두 고민을 버리고 나서야 나온 곡들이다. 오히려 곡 만드는 것보다 다시 철저한 독재권을 확립하고 강제적으로 지시에 따를 것을 팀에 강요하는 게 고민이었지. 팀의 송라이터에게 얹혀 간다는 생각을 버릴 것, 각자 만들어 온 것들을 조합하는 게 아니라 합주실에서 동시에 곡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선명한 멜로디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 이런 지시를 했다. 말하자면 화이트 쿠데타다. 민주적으로 작업하고 모든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다른 멤버들의 반응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여러 번 더빙해서 합쳐도 그게 합창처럼 들리지 않듯이,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끄집어내서 만들어야 음악이 좀 더 풍부해진다. 반대하는 멤버들에게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공갈과 다른 팀 찾아보라는 협박을 가했다. 결국 다 같이 움직인다는 취지에 강제로 동참시키는 데 성공했다. 드러머를 구하는 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만큼 마지막에 드러머 김단 군이 합류하고 나서부터 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고 있다.(웃음)

 


드러머 김단과 베이시스트 제이드가 새로 합류했다.

소개, 추천, 오디션으로 뽑았다. 이들을 빠른 시일 내에 넥스트스럽게 만들어야 했다.




‘넥스트스럽다’는 것의 의미는?

‘스타디움급 밴드다’라는 자각을 갖는 것. 요즘 록 음악은 점점 스케일이 줄어든다. 물론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의 모던 록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닌데, 너무 그쪽 일변도로 가니까. 시장이 오그라든다고 해서 상상력까지 오그라들 필요는 없지 않나. 이걸 넥스트의 한계라고 할 수도,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대중들은 ‘넥스트’라고 하면 ‘스펙터클’이나 ‘블록버스터’같이 거창하고 시원시원한 것을 원하지 소품집을 원하지 않는다. 넥스트의 멤버가 됐다면 대형 무대 위에서 악기를 메고 종회무진 뛰어다니며 연주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클럽에서 땅바닥만 쳐다보고 연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팀의 슬로건 중 하나가, 물론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우겨 넣은 것이지만 ‘연주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할 수 있어도 액션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할 수 없다’이다. 스테이지 위에서 액션을 부리다 발생한 모든 사고에 대해서는 전원 면책이다. 제이드는 원래 존 디콘 스타일의 차분하고 정확한 연주를 들려주는 베이시스트였는데 넥스트에 들어와 1년이 지나자 온갖 헤드뱅잉과 각종 아크로바틱 액션을 부리는 베이시스트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 김단의 경우는 상냥한 미소의 재즈 드러머 소년이었는데 지금은 드럼 솔로를 하면서 헤드뱅잉하고 투베이스 밟고, 지난 공연 땐 심벌만 3장을 깼다. 이런 식으로 변한다.(웃음) 그게 어떻게 보면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더라도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팀 정신이다.

 


근데 제이드(본명 박종대)는 왜 가명을 쓰나?

아우, ‘박종대’ 가지고 누가 비명 지르겠나! 종대의 이니셜 JD에 착안해서 ‘제이드’라는 가명을 지어 줬다. 처음엔 반응이 별로 없다가 최근에 ‘쿠웨이트 박’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제이드 박’이라며 놀림 비슷한 걸 당하면서 폭발적인 인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단의 경우 ‘단’을 영어로 ‘Dan’이 아니라 ‘Daan’으로 표기하도록 했더니 왜 그래야 되냐고 묻더라. 그 말 듣고 김세황과 내가 벽에 머리를 찧으며 “a가 하나인 것과 두 개인 것에 얼마나 많은 포스의 차이가 있느냐!”며 분개해야 했다.

 


‘스타디움 밴드’라는 게 넥스트가 그동안 여러 번의 멤버 교체를 하면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밴드의 정체성인가?

다른 말로 하면 ‘록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런지와 모던 록 시대 이후부터 록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 자체를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새로운 측면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넥스트의 경우 관객에게 일탈과 파격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여러분, 편하게 즐기다 가세요’ 따위의 공연은 생각지도 않는다. 김세황의 경우 관객의 반응이 부진할 때엔 분노가 폭발한다. 3.5m 높이 무대에서 뛰어내려 발이 부러질 뻔한 위기를 감수하며 기타를 메고 관객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적도 있다.

 


이런 것에 대해 새 멤버들이 잘 따라오고 있나?

본인들이 마음을 먹고 그런 것을 스스로 즐겨야 부쩍 느는 것이지만, 일단 넥스트에 합류하게 되면 소극장 공연 50회 분량에서 나올 수 있는 아드레날린의 홍수를 맞게 되기 때문에 몇 번 투어를 돌고 나면 인간 자체가 변하게 된다.





 


이처럼 아드레날린의 홍수를 일으키는 록 밴드가 국내에 많지 않은 가운데, 록스타의 필요성을 느끼며 넥스트를 이끌어 가고 있는 건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다. 나 같은 경우 80년대 메탈 세대다. 그걸 중심으로 해서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90년대 음악으로 나온 경우인데, ‘쌍팔년도’의 헤비메탈은 가장 쾌락적이고 말초적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보면 기타에 디스토션이 거의 걸려 있지 않지만 무대에서 발휘되는 폭발할 듯한 에너지의 압도적인 흐름은 메탈리카에 결코 뒤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국 록은 음악 자체보다는 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넥스트로서는 땅바닥만 쳐다보며 연주하는 록 밴드를 볼 때 잘 이해가 안 간다. 넥스트에 있어서 로큰롤이라는 건 과잉과 폭주와 무절제의 음악이다.

 


전국 투어에 들어갔다. 언제까지 하나?

계속 밀고 갈 거다. 투어를 하면서 6집 앨범의 두 번째, 세 번째 파트를 차례로 낼 거다.

 


넥스트의 활동은 공연 위주인가?

TV도 할 수는 있는데, 나갈 만한 프로그램이 몇 군데 없어서.

 


활동 영역이 굉장히 넓다. 책을 냈으며, 얼마 전까지 라디오 DJ를 했고, TV 프로그램은 몇 개나 하고 있고, 뮤지컬배우까지 도전했다. 이러면서 새 앨범까지 준비하고. 사람이 한계가 있는데, 대체 이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심지어 이번 앨범에선 재킷 디자인까지 했다.(웃음) 인터뷰집 <쾌변독설> 낼 때 지승호 씨가 그러더라. “당신의 시간 배치는 불가능하다. 그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최근에 나온 만화책을 다 알고 있으며, 게임은 언제 해서 레벨이 올라가 있는 것이냐!”(웃음)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도 꽤 되거든. 아이들과도 놀아 주고, 잠도 충분히 잔다. 내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소기의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타고난 자질의 문제가 아니겠는가.(웃음)

 


일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하나 보다.

그다지 효율적으로 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런 것들을 다른 말로 ‘천재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웃음) 난 최근에 이쪽으로 ‘필’을 굳혔다. 아무리 겸손해 봤자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차라리 잘난 걸로 가자. 난 사실 둔재형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케이스다. ‘천재의 뒤늦은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난 어릴 때부터 다니던 음악 레슨마다 다 퇴짜 맞고, 음악적으로는 열등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내 또래들이 음악계에 속속 진입해 성공하는 모습을 어린 나이에 지켜보면서 굉장히 초조하게 쫓기는 기분으로 음악을 했다.

 


너희가 B급 방송을 아느냐


그 많은 활동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코미디 TV <신해철의 데미지>다. “신해철이 저런 방송을?” 이란 말이 절로 나오던데.

‘개쌈마이 낚시 프로’지. 팬들도 제발 그거 하지 말라며 말린다. 그런데 <데미지>는 굉장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송 내내 ‘이것은 재연 프로그램입니다’라는 자막이 다섯 번이나 나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청자들은 진짜 싸움이냐고 물어 본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정보만 볼 뿐이다. <데미지>에서 보여 주는 세계야 말로 재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리얼한 현실 세계다.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찌질하고 추잡하고 구린내가 난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 따위는 아주 흔한 일이고, 온갖 배신과 모략과 무능력과 부도덕이 판을 친다. 그런데 이 쌈마이 재연 프로그램에 나오는 스토리가 당신들이 보는 재벌 2세 드라마보다 비현실적인 것일까? 아직도 많은 제작비를 들여 고급 세트에서 유명 배우들이 “걔는 니 오빠야! 입양했어도 오빠는 오빤 거야” 이런 대사를 읊고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솔직하고 어느 쪽이 위선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 <데미지>는 즐겁게 하고 있다. 부담도 적고, 오늘은 또 무슨 쌍스러운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고. 대부분 신문 사회면에 실렸던 실제 이야기를 약간씩 비틀어서 만드는데, 사건과 전혀 관계없이 무조건 정사 장면이 끼어 있다.(웃음) 이런 것들을 보면서 그냥 웃는 거다.

 


<데미지> 제작진이 신해철을 섭외한 것 자체가 신기하던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연락이 왔기에 “<데미지>가 뭐야?” 그러고서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런 개쌈마이 프로그램이 있다니, 하자!(웃음) 내가 이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굉장히 놀랄 것이다. ‘저 새끼 완전 한물갔구나’ ‘이제 막장으로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다, 해보자, 이랬던 거다.





 


사람들이 신해철에게 갖는 이미지를 전복시키기 위함인가?

옛날부터 나는 B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본의 아니게 내가 A로 규정지어지더라. 사람들이 나를 A로 강제하더라. ‘음악 하는 명문대생’ 이미지로 데뷔한 게 시발점이었다. ‘발라드를 부르는 귀공자’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닭살 돋아 죽는 줄 알았다.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이 표방한 게 굉장히 키치적인 B문화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방구 얘기, 섹스 얘기 하면서 그 안에서 빈정거리는 느낌을 담고 있었던 거지. <데미지>는 전형적인 ‘케이블 쌈마이 B문화’의 세계를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넥스트는 이런 것과 정반대로 가고. 이런 갈지자 행보를 하니까 팬들도 헷갈려 한다.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남들에 의해 A로 규정되어 그 길로만 갈 이유가 없다. ‘신해철은 <데미지>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규정되는 거 자체가 싫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공중파와 케이블이 예산을 축소하고 있으니까 <데미지>도 조만간 폐지되거나 내가 잘리거나 할지도 모르지. 물론 시청률은 굉장히 잘 나온다.(웃음)

 


<스페셜 에디션>과 얼마 전 하차한 <이색뉴스쇼 SMASH>는 진행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적극 참여한 걸로 안다.

100% 내 의지대로 만든 프로그램은 <스페셜 에디션>이다. 외주제작사에 내 아이디어를 주고 만들자고 한 거다. 예능 프로그램이 득세를 하다 보니 도대체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이 없어진 거다. 굉장히 오랜만에 복귀한 아티스트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대중이 그에게 궁금해 하는 것이 적어도 20분 분량은 나올 거 아닌가. 그런데 30초간 근황 물어본 다음 계속 게임을 시킨다. 빅 스타들이 예능에 안 나가는 이유는 쪽팔려서가 아니라 나가 봤자 아무 것도 안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MC 한 명, 출연자 한 명, 패널 없음, 얘기만 함, 대본 없음. 물론 대본이 있긴 하지만 내가 안 보니까.(웃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더니 굉장히 빨리 방송사에서 답변이 오더라. <스페셜 에디션>은 계속 진행해 볼 생각이다. 섭외 상황이 호화찬란하다. 연예계뿐 아니라 문화계나 정치계 인사들이 출연하겠노라는 의견을 전해 왔다.

 


서태지와 한 <스페셜 에디션> 첫 방송에 대한 소감은?

<스페셜 에디션>은 출연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프로그램이다. 게스트에 따라 전혀 다른 프로그램으로 보일 수 있다. 스태프들에게 ‘출연자가 원하는 맞춤형 토크쇼’를 하자고 얘기했다. 출연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고 어떻게 비춰지고 싶어 하는지 관심을 보이자고. 이것이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다. 서태지 편의 경우 서태지의 욕구가 그대로 드러났다. 서태지가 또렷하게 할 말은 하지만 그리 말 많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마디 끌어내기 위해 내가 천 마디를 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어서 좀 힘들게 방송을 하긴 했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신해철이 최초로 방송에 같이 출연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길 원했다. 그래서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라기보다는 둘 다 게스트이자 호스트인 느낌을 준 것 같다. 서태지의 사악한 계산이 깔려 있었던 거다. 내 입을 통해서 자기 얘길 하는.(웃음)

 


<마리아 마리아>로 뮤지컬배우 데뷔도 했다.

같이 공연한 배우들이 만들어 준 굉장히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응석받이처럼 공연을 했다. 나보다 한참 나이 어린 배우들이 마치 보호자로서 애 돌보듯이 나를 돌봐 줘서 즐겁게 무대 경험을 했다. 그래도 말미가 되니까 ‘역시 난 커다란 스피커와 땀범벅 되어 열광하는 관객들이 있는 공연 체질이야’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물론 뮤지컬을 하면서 음악적으로 도움 받은 것도 참 많다. 대중가요라는 뻔한 틀 내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해본 건 나 자신에게 많은 에너지 충전이 됐다. 앞으로 좋은 악역이 또 들어오고 출연료만 맞는다면 기꺼이 응할 용의가 있다. 요즘 (김)구라랑 좀 다녔더니 돈에 민감해진다.(웃음)

 






마왕, 악역 전문 배우 되다?

 


연기는 드라마가 먼저였다.

대본이 안 들어오니까!(버럭) 드라마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연기를 하면 음악도 옵션으로 딸려 간다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도 대본이 안 들어온다.(웃음) 사실 <안녕, 프란체스카> 하고 나서 한참 지난 후에야 재미있는 작품 있으면 연기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 드라마 끝난 직후엔 “다시는 연기 안 한다”고 했다. 아니, 새벽 4시에 집합시키니까.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오전 스케줄이란 게 없었다. 막 데뷔했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 9시에 라디오 나가서 노래 부른 이후부터 매니저에게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날 오전에 깨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하니까 어쩔 수 없더라. 새벽에 일어나야지. 드라마도 참 재미있는데. 가끔씩 본업 안 해칠 정도로 참여한다면 얻는 것도 많고 좋다. 빨리 악역 전문 배우로 입지를 다져야 하는데.




영화음악도 많이 했다.

영화음악은 부담이 많이 된다. 흥행이 안 될까봐. 내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 중에서 흥행 대박은커녕 ‘참패’라는 단어가 안 붙는 게 없다. 중박도 없다. 영화음악에 관한 한 팬들이 나에게 붙여 준 별명이 있다. ‘마이너스의 손’. 물론 제의는 계속 들어온다. 그런데 요즘 영화계가 워낙 어려우니까 영화가 많이 자빠지잖나. 이 작품은 음악 해봐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하면 자빠지고. 이런 식이다.

 


그래도 OST 앨범은 많이 팔리지 않았나?

많이 팔리기도 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정글 스토리> 사운드트랙이 많이 팔리고 음악적인 칭찬도 좋았던 것과 <정글 스토리>의 흥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 <세기말> 음악도 ‘일렉트로니카 분위기와 몽환적인 느낌이 썩 맛깔나는 앨범’이란 얘기를 듣는데, 연출한 감독은 “한국이 싫다”며 이민 갔고. 이건 뭐… 영화음악 얘기 그만 하자. 머리에서 김 난다, 진짜.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이 얼마 전 종영됐다. 하고 싶은 말 많이 못하게 돼 답답하겠다.

가끔 입 다물 때도 있어야지. <100분 토론>도 나가고 또 여기저기 다 떠들고 다니면 곤란하지 않나. 그리고 <고스트 스테이션>의 경우는 지금 청취자들을 벌주고 있는 중이다.

 


청취자가 뭘 잘못했기에?

DJ의 소중함을 몰라. 자기네 DJ가 음악 하고 있으면 마땅히 공연 오고 앨범을 사야지. DJ 신해철과 음악 하는 신해철은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나를 매일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해 주고 사라지는 ‘입담꾼’으로만 여긴다면 곤란하다. 앨범 팔리는 거 보고 라디오 다시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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