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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에서 튀어나온 록 밴드

2008-12-15 11:33
만화경에서 튀어나온 록 밴드
만화경에서 튀어나온 록 밴드

2008년 최고의 신진 인디 밴드 ‘국카스텐’

 

깜깜한 무대에 막이 오르고 오색찬란한 조명이 불을 밝힌다. 드디어 가슴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내 모든 물체가 형체를 잃고 녹아내리면서 공연장은 삽시간에 뜨거운 광란의 공기로 가득 찬다. 여기는 거대한 환각이 피어오르는 만화경 속의 세상. 그 한가운데서 어김없이 4인조 록 밴드 ‘국카스텐’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감전시키는 짜릿한 음악으로 국카스텐은 마침내 EBS <스페이스 공감>이 주최한 ‘2008 헬로루키 Of the Year’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명실상부 2008년이 낳은 최고의 신진 인디 밴드로 떠오른 국카스텐. 12월의 어느 늦은 저녁, 그들의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장성란 기자 | 사진 황민성

 






국카스텐만의 음악을 낚아 올리기까지

 

‘2008 헬로루키 Of the Year’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사실 결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대상 욕심을 좀 냈는데 그날 공연을 완전히 망쳐서 포기하고 있었다. 본방 무대 사운드가 리허설 때 세팅해 놓은 것과 다르게 나왔다. 기타 소리가 제대로 안 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해 짐 싸고 있는데 대상을 받은 거다. 그래서 더 기뻤다. 하지만 수상소감에서도 밝힌 것처럼 다른 밴드보다 물 한 모금 더 마신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무대만 아니라 국카스텐으로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부터 늘 시험 보는 기분이었다. 라이브클럽 ‘쌤’의 ‘프레쉬그라운드’ 무대에서 다른 신생 밴드들과 경쟁할 때도 그랬고 ‘2008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힐 때도 그랬다. 그래서 대상 수상 다음날 바로 제정신 차렸다.

 

밴드 이름 ‘국카스텐’은 무슨 뜻인가?

중국식 만화경을 뜻하는 독일어다. 만화경을 통해 보는 영상처럼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강렬한 록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멤버들은 어떻게 만났나?

2000년, 하현우(보컬, 세컨기타)와 이정길(드럼)이 만난 데서 밴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때 하현우와 이정길은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정길이 한눈에 탁 튀는 스타일의 하현우를 보고 “록 음악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건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거다. (그때 이정길의 행색이 너무 초라하고 지저분해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현우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자 이정길 스스로 슬리퍼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볐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2001년 인터넷을 통해 전규호(기타)를 만나 ‘뉴 언발란스(New Unbalance)’를 결성해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뉴 언발란스에서 국카스텐으로 거듭난 것은 언제인가?

2003년 멤버를 재정비해 ‘더 컴(the c.o.m.)’으로 활동하다 멤버들 군입대 문제로 잠정 해체했다. 그러다 2007년 전규호, 하현우, 이정길 세 명의 멤버가 다시 뭉쳐 국카스텐을 결성하고 강원도에서 합숙하며 음악을 만들었다. 지난 6월, 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기범(베이스)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7~8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라 가족 같은 느낌이겠다.

눈빛만 봐도 모든 걸 알 수 있는 사이라 전규호, 하현우, 이정길 이렇게 셋이 있을 때는 거의 말없이 지낸다. 그런데 김기범이 들어온 후로 웃고 떠들고 걷기 시작했다. 하하하. 김기범이 밴드의 막내로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뉴 언발란스 시절이 궁금하다.

뉴 언발란스 때는 말 그대로 모든 게 불균형했다. 새로운 건 별로 없었다.(웃음) 한마디로 ‘놀자 판’이었다.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이런 연습실은 꿈도 못 꿨다. 담뱃값이 없어서 꽁초 피우고 지하철로 공연 장비 옮기던 시절이었으니까. 공연하고 돈도 제대로 못 챙겨 받았다. 그래서 해체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 냈나?

밴드 활동을 계속하려면 무엇보다 삶의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하다. 실제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유가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여유가 없으면 뭘 해도 안 된다.

 

더 컴 시절에는 어떤 음악을 했나?

더 컴은 우리 밴드의 음악적 가치관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다. 더 컴이란 이름 자체가 ‘음악의 나침반(the compass of music)’이란 뜻이다. 더욱이 그때는 영국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상당히 여리고 감성적이었다. 그때 우리의 감성은 영국의 계절과 같았다. 많은 부분 영국적 감성에 의존해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독창적인 음악을 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당시에 비슷한 형식이나 색깔을 가진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았으니까.

 

국카스텐의 음악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

밴드 멤버들이 군복무 중이던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의 공백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전역 후 당장 밴드를 다시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다시 밴드를 한다면 완벽하게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만의 색깔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했다. 전역 후 현실의 벽 때문에 다른 일을 할까 했는데 전규호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다시 뭉치면서 지금의 ‘국카스텐’ 음악이 태어난 거다.

 






 

우리 모두의 불안을 치유하는 음악

 

작사, 작곡은 어떻게 하나?

작사는 하현우가 하고, 작곡은 하현우가 기본 멜로디 라인을 만들면 다 같이 모여서 자기 파트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작곡 문제로 전규호와 하현우가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여러 부분에서 합의를 본 상태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작업한다. 아무래도 리더인 하현우가 음악적 틀을 제시하고 그걸 구체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정길은 곡 전체의 기승전결과 분위기, 리듬을 책임지고 있다.  

 

작사, 작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술적인 창조는 사실 회사나 학교 다니는 것처럼 시간을 정해 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창조라는 건 결국 지루한 시간을 얼마나 잘 버티느냐의 싸움이다. 낚시랑 비슷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입질이 오는 순간 탁 잡아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베짱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밴드에 비해 국카스텐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점은 무엇인가?

음, 거의 모든 점? 멤버 개개인의 연주 실력, 감각, 퍼포먼스 등 전부 최고다. 비주얼이 살짝 달리는 것만 빼면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하하하하. 농담이다. 설마 이 말을 그대로 옮기는 건 아니겠지?

 

말한 그대로 쓸 거다. 언행에 신중을 기해 달라.(웃음)

그럼 이렇게 써 달라. 국카스텐이 다른 밴드에 비해 뛰어난 점은 바로 겸손함이다! 하하하하.

 

멜로디와 가사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강렬하고 신나는 멜로디와 달리 가사는 한결같이 존재의 불안, 좌절, 무기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멜로디와 가사의 상반된 정서가 한데 합쳐지면서 커다란 에너지를 분출한다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태와 좌절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객관적으로 파헤치고 응시하는 것뿐이다. 내면의 응시가 계속되면 결국 죽음과 같은 허무가 남는다. 바로 그때,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한 공간에서 돌멩이 두 개가 부딪쳐 불꽃이 일어난다. 전혀 다른 A와 B가 만나서 C를 만들어 내는 몽타주 효과. 우리 노래에 바로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국카스텐의 음악은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구원과 탈출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독과 불안을 즐기는 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우리 노래는 세상을 향해 침을 뱉고 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유머와 해학을 통해 순간적으로 답답한 현실을 덮어 버리거나, 그런 세상을 이겨 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우리 안에서 이렇게 슬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노래하는 거다. 결국 우리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란 얘기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서 허무를 끄집어내 다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상처를 먼저 내보이는 거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돕는 거지. 그 사람들이 다시 우리를 향해서 손을 흔들 때 우리 내면의 상처도 치유된다. 그렇게 우리 음악은 공동 치유를 꿈꾼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헤드(Radio head)’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사를 많이 쓰지 않나. 물론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음악은 듣기 좋은 게 먼저다. 예술의 가장 솔직한 목적은 감성적인 유희에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국카스텐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현실적으로 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면 음악적 색깔도 달라질 거라고 보나?

우리가 말하는 불안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내면적인 거다. 현실적인 불안은 우리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음악은 그저 속풀이밖에 안 되는 거지.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또 많이 잃어도 내 자신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면에 작은 균열이 오기 시작하면 모든 게 무너져 버린다. 그때는 물질이고 뭐고 다 소용 없게 된다. 죽기 전까지 내면의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곧 1집 앨범이 발매된다고 들었다.

이미 예전에 녹음도 다 마쳤고 앨범 재킷도 벌써 디자인이 끝나 인쇄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 ‘2008 헬로루키 Of the Year’에서 대상을 받고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과 손잡았으니 조만간 앨범이 나올 거다. ‘거울’ ‘파우스트’ ‘가비알’ ‘림보’ ‘꼬리’ ‘미로’ 등 전부 12곡을 수록했다.

 

연말 공연 일정이 어떻게 되나?

12월 14일에는 클럽 쌤에서 ‘안녕바다’와 함께 하는 공연이 있고 20일에는 클럽 FF 무대에 설 계획이다. 26일에는 이장혁 2집 앨범 쇼케이스 무대에서 어쿠스틱 연주를 선보인다. 31일에는 클럽 DGBD에서 관객들과 2008년의 마지막 날을 함께할 거다.  

   

2008년 최고의 신진 인디 밴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2009년에는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

일본 오리콘 차트 10위 안에 드는 것. 오리콘 차트가 상업적인 것만큼 음악적 완성도도 많이 반영되는 곳이다. 그 다음 2010년에 영국에 가서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머리카락 10개는 뽑아 와야 성이 찰 거 같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니까. 하하하하.

 





국카스텐의 나침반이 되련다_하현우(보컬, 세컨기타)

자칭 ‘경기도 안산 최고의 퍼포먼스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자랑하는 국카스텐의 리더. 스스로를 밴드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리더라고 소개한다. 예술적인 재능이 넘치는 베짱이로 태어나 지금껏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하현우에게 그림이 아닌 음악을 업으로 삼은 이유를 물었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저만의 색깔을 나타내는 예술적 창조 행위라는 점은 똑같아요. 하지만 음악을 가지고 무대에 서면 순간적으로 몸에 불이 붙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돼요. 그 순간만큼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인간 본연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게 참 마약 같아요.” 무대 위에서 발화되는 경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밴드 리더로서 할 일이 많다. 작사, 작곡에 보컬과 기타 연습은 물론이고 밴드 업무도 도맡아 봐야 한다. 전화할 일이 많아져 얼마 전 요금제를 바꿨다고 자랑이 한창이다. 앞으로 국카스텐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것으로도 감당이 안 될 텐데 이를 어쩌나. 

  





그저 음악이 좋은 강원도 사나이_전규호(기타)

멤버들 말에 따르면 국카스텐의 맏형 전규호의 인생 자체가 하드코어 록이란다. 말 없는 그에게서 ‘하드코어’ 인생의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눈에 강원도 사나이의 뚝심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작은 형 어깨너머로 기타를 배운 것이 음악과 맺은 첫 인연. 이후 그저 음악이 좋아서 혼자 기타를 메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결국 국카스텐이 자랑하는 최고의 이펙트 연주자가 됐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예요. 연습 많이 했으니까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무대 위에서 조용히 빛나는 그의 연주처럼 올해 초 밴드 멤버들이 강원도에서 합숙을 하면서 부업으로 포장마차를 운영할 때도 그는 든든히 주방을 지켰다. 계란탕과 김치볶음밥을 비롯해 못 하는 요리가 없단다. 하지만 끈기 있고 참을성 많은 그도 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저분한 이정길과는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며 조용히 독립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부디 그의 삶에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와일드 와이드’한 드럼의 쾌속 질주_이정길(드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정길은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러 달려갈 것이다. 넓고 거칠게,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내일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지금 그의 곁에는 다시 만나기 힘든 최고의 멤버들이 함께 있다. 제발 방 좀 치우라는 멤버들의 성화에도 그게 모두 ‘와일드 와이드(Wild Wide)’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꿋꿋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드럼을 치는 그는 다르다. “드럼 위에 올라앉으면 제 안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어두운 자아가 슥 모습을 드러내요. 그럼 그때부터는 이정길이 아니라 광길(光吉)이 되는 거예요.” 광길은 이정길의 음악적 자아. 광길은 지저분한 이정길과 달리 곡 전체의 기승전결과 리듬을 깔끔하게 챙길 줄 안다. 무엇보다 그는 드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 이제는 잘 씻는다고 변명하는 이정길의 말은 믿기 힘들지만 자신에게 음악은 종교라고 말하는 광길의 진지한 눈빛은 굳게 믿지 않을 수 없다.

 





베이스를 집어던지는 화끈한 록 스타 _김기범(베이스)

국카스텐의 막내 김기범은 ‘2008 헬로루키 Of the Year’ 대상을 받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다가 하현우에게 걸려 망신을 당했다. 그 때문인지 군입대를 앞두고 국카스텐의 발목을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부디 그의 농담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무대에 설 때면 아직도 매번 입에 침이 마르지만 김기범은 국카스텐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대 위의 희열을 다시 맛보고 있다. 고등학교 밴드에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관자놀이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했던 그는 한동안 그 기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국카스텐에 합류하면서 새롭게 무대에서 발화되는 법을 터득했다. 그 기분에 심취한 나머지 2008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무대에서는 연주를 마치고 베이스 기타를 뒤로 집어던져 버렸다. “베이스를 던진 순간, 록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모든 기타리스트의 로망을 이룬 기쁨은 뒤에 엄청난 물질적 고통을 남겼지만 후회는 없다. 록 스타의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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