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로 왕따를 뽑는 고등학생들이라는 황당한 설정. 현실감은 '로그아웃'할 것 같지만, '피라미드 게임'에 일단 접속하게 되면 상당한 몰입감에 빠져든다. 시청자들을 설득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고, 또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 여고판 오징어게임, 현실 사회 빼다 박은 교실 서바이벌 '피라미드 게임'
지난 21일 10회를 끝으로 전편 공개를 마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연출 박소연). 한 달에 한 번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학생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나뉘어 점차 폭력에 빠져드는 잔혹한 서바이벌 서열 전쟁을 그린다. 동명의 인기 네이버웹툰(작가 달꼬냑)을 원작으로 한다.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는 찬사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OTT 덕분에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선보이게 된 '피라미드 게임'은 프랑스 드라마 시리즈 선정 행사 '시리즈 마니아'에도 초청받은 바, 이를 두고 영국 BBC가 긍정적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사회학자 낸시 왕유엔은 BBC에 "이용자들이 '오징어 게임'과 '피라미드 게임'같은 시리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게임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방식에 있다"며 "계급에 따른 차별을 게임에 빗대어 보여줌으로써 전 세계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를 더욱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고 분석했다.
국내 화제성도 '피라미드 게임' 인기를 견인한 일등공신이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공식 플랫폼 펀덱스(FUNdex)에서 발표된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피라미드 게임'은 3주 연속 2위 자리를 지켰다.
◆ 초반 진입 장벽만 넘어가면 몰입 훅, 피라미드를 부순 듯 부순 것 같지 않은 씁쓸한 결말까지

매달마다 투표로 F등급, 즉 왕따를 뽑는다는 설정은 원작 웹툰으로부터 가져왔다. 원작을 계승한 극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피라미드 게임'을 부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
졸지에 F등급이 된 전학생 김지연은 폭언과 폭행,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F등급에서 벗어난 후부터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 피라미드 게임은 사라지지 않았고 김지연은 방관자 포지션을 취하기도 한다.
김지연은 피라미드 게임의 설계자이자 맨 꼭대기 장다아의 악행을 알게 된 후부터는 혁명의 선두에 선다. 악행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임예림, 심은정 등 학생 피해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세를 불려 오던 김지연 연합은 혁명을 성공시키고 기득권은 전복된다.
결국 사이코패스 장다아의 만행을 비롯한 학교의 비리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이에 동조했던 무리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벌을 받는 등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었다.
웨이브 '약한 영웅', 쿠팡플레이 '소년시대' 등 학원물은 이미 많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르로 각인되고 있다. '피라미드 게임'은 여고생들이 주축이 된 학원물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신선함을,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게 아닌 두뇌 싸움으로 폭력의 고리를 깬다는 점에서 여타 학교폭력물과 궤를 달리한다.

'왕따 투표' 설정은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일부 어른들의 비호 속에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채 자행되는 왕따 놀이에선 현실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각자에 계급을 부여하고 이에 따라 학교 생활 수준도 천차만별로 나뉜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약간의 유치함도 느낄 수 있다.
'피라미드 게임'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빠른 전개로 몰아치듯 돌파한다. '왜 이런 황당한 게임에 모두가 과몰입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을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자 한다. 이 시스템이 1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과정에서 납득을 시킨다. 그러면서 김지연과 최종 빌런 장다아의 대립 구도를 일찌감치 설정해, 세력 간 다툼 전개로 다음 스텝을 밟는다. 김지연 연합과 장다아 연합의 알력 다툼에서 벌어지는, 번뜩이는 두뇌싸움도 볼거리다.
다만 완벽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결말은 '피라미드 게임'이 결코 부숴지지 않았다는 걸 암시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백하린은 파양 당하고 정신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되나, 여전히 다른 형태의 학교폭력은 남아있으며 새로운 전학생(장규리)이 '피라미드 게임'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주며 마무리됐다.
또한 학교폭력을 주도했던 아이들은 모두 죗값을 치르지만 계급 차의 구조적 폭력, 가정 폭력 등으로 대물림됐던 고위층 부모의 폭력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계급사회의 축소판이었던 '피라미드 게임'은 무너졌지만, '피라미드 게임'의 원판인 현실 계급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장다아·신슬기만? 새로운 얼굴의 발견…티빙 신인 기용 전략 통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주연급 배우 김지연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신인으로 기용됐다. 그룹 아이브 장원영 친언니로 잘 알려진 장다아, '솔로지옥2' 화제 인물 신슬기가 김지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번 작품이 이들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끄는 지점이다.
연기 구멍이 한 명쯤 있을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켰다.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과 차가운 사이코패스까지 이중성을 보여준 장다아와, 안정적인 발성과 연기로 극의 게임체인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신슬기에게는 "기대보다 잘해서 의외"라는 호평도 잇따랐다.
두 사람에게만 포커싱이 향하지 않았다. 임예림 역 강나언, 명자은 역 류다인, 표지애 역 김세희, 김다연 역 황현정 등 겹치지 않는 다양한 캐릭터성을 표현한 신인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톱배우가 없으면 안 된다'는 드라마판의 흥행 공식에 또 한 번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티빙의 신인 기용 전략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해 티빙이 공개한 '방과 후 전쟁활동'에 이어 학생 역할 연기자를 신인 배우를 주축으로 캐스팅한 '피라미드 게임'.
이는 분명 화제성 유무와 상관없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배우의 이름값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이야기의 힘을 증명한 '피라미드 게임'은 '톱배우 모시기'에 집중하는 시장 분위기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제공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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