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심어놓은 항일조직의 스파이 색출 작전을 그린 첩보 스파이물 '유령'으로 영화 '독전' 이후 5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이해영 감독을 만났다.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 '경성 학교: 사라진 소녀들', '독전'에 이어 직접 쓰고 연출하는 다섯 번째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는 이해영 감독은 "'독전'때는 본격 장르물을 처음 작업했었다. 그전까지 장르물에 너무 다가가고 싶었지만 주파수를 명확히 맞추지 못했던 느낌이라면 '유령'을 통해서는 장르 안에서 여유를 가지고 더 즐겁게 누리고 즐기며 찍어보려는 노력을 했다."라며 본격 첩보 스파이물을 선보인 소감을 밝혔다.
이해영 감독은 "행복한 현장이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을 했다. '독전'은 스타일리시한 것, 미장센이 지향점이었는데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배경이고 독립운동을 담고 있어서 그게 목적이라기보다 캐릭터와 인물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에 가까웠다. 훨씬 캐릭터의 면면이 잘 보이길 원해서 캐릭터 무비에 가까운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라며 '유령'이 지향하는 지점을 설명했다.
영화 '유령'은 이해영 감독이 가진 미장센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엄청난 스케일과 장면 장면 인상적인 미술과 세트로 배우들을 포함한 영화 전체가 하나의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결과물이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그는 "만족도보다는 영화 만들 때마다 열심히 했는데 이번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해서 하얗게 불태웠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고 다한 거에서 좀 더 했다는 느낌으로 했다. 그냥 이 정도 열심히 하면 됐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잘하고 싶을 만큼 정말 성실하게 너무나 열심히 만들었다."라며 최선을 다했음을 자부했다.
미장센에 엄청 신경을 썼겠다는 질문에도 이해영 감독은 "비주얼, 소품, 의상은 모두 인물을 돋보이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 언제나 영화 만들며 제일 중요한 건 배우가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연출한다는 게 배우가 영화 속에서 얼마나 잘 녹아내는지, 그게 얼마나 잘 드러날지 서비스하는 게 감독의 일이라 생각한다. 제가 하고 싶은걸 다 했다기보다 배우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도와드렸다. 배우 캐스팅부터 배우가 가진 매력, 배우가 잘할 수 있는 것. 배우가 가진 것 중에 숨겨줄 것을 관찰하려고 했다."라며 신경 쓴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이유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강조했다.
"모든 미술은 인물들을 위한 설계였다."라는 이해영 감독은 "특별한 미술의 소품의 색깔의 구체적이고 명징한 상징을 넣지는 않았다.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미술을 활용했다. 초반의 '차경'과 '난영'의 접선 장소의 경우 접선 자체가 두 사람의 비극을 찬란함의 감정을 잘 보여주려면 그 공간이 역설적으로 너무 화려하고 반짝여야 할거 같았다. 그래서 황금관 앞의 거리를 설계한 것. 호텔의 경우 중반 이후 들어다는 공간의 민낯 어둡고 더럽고 질척이고 파괴된 걸 보여주려면 앞에서는 화려하고 반짝거리고 밝게 보이다가 대비를 시켰다. 경성 공회당의 경우 모든 총싸움과 액션이 가로로 벌어지는 운동성인데 그것만으로 설계하네는 게 너무 어려워서 공간을 많이 활용하면서도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하게 구현하기 위해 수직으로 방향성의 에너지를 바꿨다. 그래서 세로로 사람을 보내 다이나믹을 구성했다. '쥰지'와 '차경'이 싸우는 장면은 심해같이 깊이 떨어지는 걸 묘사하고 싶어서 심해를 연상케하는 커튼의 색깔과 공간으로 설계했다."라며 영화 속 결정적인 장소들이 인물들의 어떤 성향과 관련된 것인지를 설명했다.
애써 배우들이나 캐릭터보다 미장센이나 배경이 돋보이지 않기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이해영 감독이었지만 영화 속 이 장면만큼은 신경 써서 봐 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초반에 193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많이 구현해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CG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못 봤던 그림을 그려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당시 일본군이 남산의 산기슭을 엄청나게 깎아서 조선신궁이라는 걸 만들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성물인데 그걸 영화에서 잘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화 속에서 남산과 도시가 한 번에 보이는 컷이 딱 한 컷 나오는데 그것을 잘 담고 싶었다. 당시 일본군의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이었는지, 일제 침략이 우리 강산에 한 짓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나라 남산에 저런 게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라며 엄청난 고증을 통해 만들어 낸 장면에 어떤 의미와 마음을 담았는지를 설명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면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며 엄청나게 역사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이해영 감독은 "이 정도면 이 시대를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는, 스스로 자격이 됐다고 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는 제가 공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지식을 녹여내는 선에서만 역사가 반영이 되었다. 장르 영화이고 상업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독립운동가의 찬란함이 비극 일수 있는데 찬란한 승리의 순간을 너무 담고 싶었고 너무 이기고 싶었다. 그렇게 승리한 적이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영화적으로라도 잠시나마 이런 승리를 바랐을 거라는 걸 영화 안에서 간절히 담고 싶었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으로 갖고 있던 간절한 바람을 녹여냈다."라며 실제 역사와는 다른 판타지적인 결말을 그려낸 이유를 설명했다.
설 연휴에 독립운동에 대한 영화를 내놓는 건 일종의 치트키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해영 감독은 "익숙한 소재로 여겨지겠지만 오히려 몇 년 전만 해도 터부시 되는 소재였다. '암살'과 '밀정' 같은 영화가 엄청난 성과를 내고 뜨거운 소통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들에게 편한 감수성이 생긴 거 같다."라며 이전에 나왔던 훌륭한 영화 덕에 쉬운 길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며 "외국 관겍들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의 시대 혹은 역사의 키워드가 들어가면 자기와 너무 상관없는 이야기라 큰 관심이 없다. 특히 서양에서는 더욱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인 영화로 접근해서 전 세계인에게 잘 소통하고 다가갈 수 있기 바라는 바램과 욕심이 있다."라며 한국인의 정서에만 통하는 '애국 영화'가 아닌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스파이 액션물로 바라봐 주기 바란다는 말을 했다.
이해영 감독은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밀실 추리극이다. 저는 이걸 '유령'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추지를 배제하려 했다. '박차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기에 그를 따라가며 함정을 어떻게 빠져나가 결과에 이르는지를 관객들이 잘 지켜보길 바랐다. 중간에 생기는 의심이나 호기심은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거라 간곡히 부탁드리는 건 이 영화는 추리물이 아니라 스파이 액션물이다."라고 강조를 했다.
이해영 감독은 "한국 영화가 팬데믹 이전처럼 날개를 펼치지 않아서 많은 작품이 계속 선보이는 건 필요한 일 같다. 그래야 관객들이 더 선택할 마음이 생기는 거 같다. 설 연휴 기간 동안 '교섭'과 함께 '유령'도 선보이는데 관객들에게 약간 찬거리가 많은 진수성찬처럼 보이면 좋겠다. 두 영화 다 잘되면 좋겠다."라며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 선전을 기원했다.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 '유령'은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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