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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의사생활' 나쁜의사 천명태役 '존재의 이유' [인터뷰M]

기사입력2021-10-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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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무자비한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직업 소명이 투철하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선인들로 넘쳐난다. 대다수 작품에 필수불가결 요소로 작용되는 악역은 고작해야 짜증 유발 수준의 천명태 교수뿐이다. 이러한 연출 방향은 '발 뻗고 볼 드라마'를 만들고픈 제작진의 염원이 투영된 모양새이자, 궁극적 메시지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2를 끝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시즌1부터 높은 시청률과 엄청난 화제성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무엇보다 도전 정신이 도드라진 작품이었다. 주 1회 편성으로 구성의 밀도를 높이고 참여 인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메디컬 드라마지만 어려운 전문 용어와 촌각을 다투는 응급 상황은 차선으로 두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해 미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전미도, 최영우, 하윤경, 곽선영, 문태유 등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하던 재야의 고수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수장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답습을 피하고자, 수많은 위험 요소를 감수했고 결국 드라마 산업 발전에 한몫을 해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연출진에게 있어 악역의 최소화 역시 리스크가 큰 도전이었다. 신 감독은 iM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 불편한 악역이나 갈등들은 보기 어렵더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장 기본 요소가 갈등이기 때문에, 그 갈등을 유발해 줄 악역들은 당연히 필수요소다. 하지만 그 악역을 최소화해서 가보자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고 소신을 설명했다.

이어 "각 캐릭터들, 그리고 관계들이 갖고 있는 설정들로부터 나오는 갈등으로도 충분히 꾸려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며 "악역들은 최소한으로 꾸려가되 그마저도 현실에서 만날 법한 캐릭터로 꾸리고, 그런 갈등마저도 되도록이면 빨리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불편한 느낌이 오래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마음 편하게 발 뻗고 보실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병원 풍경은 허구에 가깝다고 볼멘소리 한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의료진의 서비스 요소 중 '친절한 미소'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수일 혹은 수달을 기다려 간신히 예약을 하고, 저명한 대학 교수 앞에 앉으면 피곤한 얼굴을 한 그들의 고압적인 3분 진료 앞에 좌절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고고한 태도에 위압감을 느끼거나, 불친절을 경험해 불평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만인의 친구 이익준(조정석 분), 소아과의 천사 안정원(유연석 분),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한 김준완(정경호 분), 겁에 질린 환자에게 응원의 말부터 건네는 양석형(김대명 분), 매스컴에 얼굴을 내비치면서도 환자의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는 채송화(전미도 분). 일명 '율제병원 99즈'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감독은 이를 '판타지'라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세상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판타지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 '좋은 사람들 사이에,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이야기를 만들려 한다"며 "그걸 판타지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저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었으면 한다. 결국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드라마는 결코 한 직업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좋은 마음을 가진 직업인들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였다"며 "사실 공유 같은 도깨비도 없고 박보검 같은 남자친구도 없다. 어차피 모든 드라마가 판타지라면 그나마 좋은 사람들의 세상은 그나마 더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신 감독은 "웬만한 설정으로는 일말의 화제성도 얻지 못하는 시대다. 때문에 드라마는 점점 독해지고 있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쇼킹하고 보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의 틈바구니 속에 이런 착한 판타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런 세상이 오면 좋지 않겠나라는 염원. 비록 동 떨어진 허구의 이야기라도 보는 이들이 위로 받길 바라는 마음에 연출력을 선하게 사용한 모양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그럼에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단 한명의 빌런을 남겨뒀다. 바로 천명태 교수였다. 흉부외과 소속으로 공포의 3분 진료로 유명한, 일명 흉부외과 '막말 제조기'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그는 형편없는 진료로 환자들을 서럽게 만든다. 사명감은 없으나, 생존 비법은 진작에 터득해 정치인 진료에는 발 벗고 나서며 컴플레인 게시글은 직접 삭제하는 인물이다. 주인공들을 위기로 몰아넣거나, 서늘한 기운의 맹목적 악인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짜증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했다. 작품에 기필코 필요한 1인이기도 했다.

신 감독은 "천명태 역할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가 리얼리티의 역할이라면, 또 하나는 비교대상으로서의 기능이었다"며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거나 갈등의 빌미가 되는 역할까진 아니더라도 비교대상으로서 다른 캐릭터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를 잘 보일 수 있는 상대적 역할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분량이나 비중이 크지 않으니, 짧은 시간에 빛을 발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신 감독은 이를 염두에 두고 단번에 배우 최영우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만났다. 당시 먼저 캐스팅된 배우 이규형의 제안으로 오디션에 참여했던 최영우는 신 감독의 눈에 들었고. 재소자들에게 뇌물을 받는 교도관 역할을 맡아 대학로 연극 무대를 전전하며 다져온 내공을 양껏 발산했다. 신 감독은 "천명태는 그 역할이 만들어진 즉시 이건 그냥 최영우 배우 시키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그쪽 방면은 잘하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극찬했다.

최영우는 올해 나이 39세의 배우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천명태 교수는 작중 설정 나이 54세였다. 신 감독은 "나이대가 안 맞는 게 걱정이었는데 연기를 보니까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었더라"며 웃었다. 그는 "시즌 후반부에 최영우에게 '왜 자꾸 젊어지냐'고 농담했었던 기억이 난다. 열 살 넘게 차이나는 역할이었는데도 너무 잘해줬다"고 신뢰를 내비쳤다.

후속 작품에서의 쓰임새도 염두에 두고 있는듯해 기대감을 높였다. 신 감독은 "다만 '언젠가 한 번은 악역이 아니라 반전이 있는 역할 한번 맡아보면 재미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든다. 워낙 갖고 있는 게 많은 연기자"라고 덧붙였다.

iMBC 이호영 | 사진 iMBC DB,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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