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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터뷰] '부부의세계' 한소희가 이겨낸 것들

기사입력2020-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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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희가 해냈다. 관록의 김희애와 눈에 불을 켜며 맞섰고, 연상의 박해준과는 보란 듯이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심오한 '부부의 세계' 속 갈등의 주축을 도맡아 제 몫을 마땅히 다한 그다. 자칫 주변인 정도로 소모될 수 있던 자신의 역할의 값어치를 스스로 끌어올린 것이다.
iMBC 연예뉴스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연출 모완일) 속 여다경을 떠나보낸 한소희는 "슬프고 불안하다. 섭섭하지만, 조금은 시원한 기분도 든다"며 작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의 세계', 특히 그가 푹 빠져 살았던 여다경 역할은 배우 입장에서 상당히 난도 높은 인물이었다.

부잣집 공주님으로 자라나 제 손으로 무엇하나 이뤄본 적 없던 여다경은 하필이면 처자식 딸린 예술가 이태오(박해준)를 사랑해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현실보단 감정에만 치중해 결국 한 가정을 파탄 내는 장본인이었다. 여다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막장에 가까운 사건사고 중심에 섰고, 자존심 세고 어리석기 짝이 없어 꼿꼿하게 버틸 줄만 알았다. 한소희는 이렇게 감정 소모의 끝을 달리는 극성맞은 인물과 혼연일체 되어야만 했다.

그는 "불륜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본적이 없던 신들이 많더라. '과연 내가 여다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상식선에서는 이해 못할 인물 아닌가"라며 "원작을 보고 나서 더 충격을 받았다. 항상 두려움을 안고 대본을 읽은 것 같다. 촬영 내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임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극중 여다경의 선택, 서사,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현실에서 겪어보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한소희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머리로 이해하기도, 가슴으로 공감하기도 힘든 역할이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친구다.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괴로웠다"고 전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배우가 역할을 공감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나 다름없다. 이에 한소희는 "'유부남인 이태오' 가 아니라 '이태오가 유부남'이라고 키워드의 앞뒤 순서를 바꾸니 공감의 틈이 생기더라"며 "여다경이 사랑한 것은 이태오다. 하필이면 이태오가 유부남이었고, 이후 여다경은 사랑에 눈이 멀어 '유부남'이라는 키워드를 애써 지웠다고 이입했다"고 설명했다.

한소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다경이 이태오에게 사랑에 빠진 지점도 마련했다. 그는 "여다경은 타고난 금수저다. 부모가 지닌 부와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화초처럼 자라난 인물이다. 주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걸 보면 참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실패해도 걱정이 없었을 것"이라며 "달리 보면 이태오도 마찬가지였다. 아내 덕분에 예술을 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쥐뿔도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하며 내 사람에게 기대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연민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부부의 세계'는 마치 연기 불구덩이나 다름 없는 작품이었다. 주조연 너나 할 것 없이 역할에 빠져 호연으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여 호평받았기 때문이다. 한소희는 경력으로만 따지면, 쟁쟁한 선배들과 견줄만한 체급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다경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될 핵심 인물이었다. 이는 한소희 어깨 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는 "촬영을 진행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김희애 선배와 맞붙을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내가 아무렴 기교를 부려봤자 비교도 되지 않을 연기자 아닌가. 현장에 김희애 선배는 없었다. 지선우만 존재하더라.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더라. 안간힘을 써봤자, 반도 못 따라가는 내가 한심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박해준은 또 어떤가. 그 선배는 내가 바짝 긴장해 있으면, 굉장히 해맑게 웃으며 현장을 누비더라. 그러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일순간 이태오의 가면을 쓴다"며 "김희애 선배는 '부부의 세계'로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신 것이다. 박해준 선배는 드라마 첫 주연작이라더라.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혹여 피해를 끼칠까 하는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고 말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작품 속 뻔뻔하기 짝이 없는 여다경에게 분노를 느껴본 이들이라면, 이러한 한소희의 심경 토로가 엄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정도로 한소희는 제 역할을 주무르며 열연했다. 비결은 채찍질이었다. 한소희는 "안팎으로 부담스러운 작품이었지만, 덕분에 내가 자라난 것도 있다. 천만다행인 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이다.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양분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한소희는 명료하게 역할과 자신의 가치관을 구분할 줄도 알았다. 그는 "여다경에게 연민을 느끼기야 했으나, 딱 그 정도까지였다. 아마 지금쯤 여다경은 지옥을 살고 있을 것이다. 아빠 없는 자식을 홀로 키워야 하고, 사랑의 상처도 평생 남아 새 사랑을 시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혹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나도 신뢰에 금이가 의심부터 하고 보지 않을까 싶다. 본인의 업보"라고 선을 그었다.

간혹 악역을 담당한 이들 중 역할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시청자의 날 선 반응에 상처 받아 의기소침해하는 배우들이 있다. 한소희는 예외였다. 그는 "악역이 욕을 먹는 건 좋은 의미다. 감사하다. 오히려 반응을 즐기고, 더 욕을 먹고 싶은 욕심도 나더라"며 "오히려 요즘 시청자 분들은 명료하게 구분하신다. 여다경은 얄밉지만, 한소희는 응원하고 싶다는 분들도 계신다"며 웃었다.

들려오는 후문으로, 현장에서 한소희는 온갖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며 분위기를 풀었다. 이에 그는 "원래 누군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 부담이 느껴졌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현장에 도착하면 긴장을 푸는 연습부터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고착에 대한 우려도 쿨하게 씻어냈다. 한소희는 전작 '백일의 낭군님', '돈꽃'에서도 불륜 내연녀 역할을 맡아 인상을 남겼다. 더욱이 이번 '부부의 세계'는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한소희라는 배우 이미지에 더욱 강렬한 낙인을 새겼다. 이와 관련 그는 "이미지 고착을 걱정하지 않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끗 다르게 생각해서 내가 이미 해본 비슷한 결의 연기도 못해내면 다른 역할은 할 수 있을까 싶더라. 이미지를 뒤집을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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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점에 한소희는 곁가지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사진, 문신, 흡연 등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그때의 모습도 내가 맞고, 지금의 모습도 나다"라며 "불과 4년 전의 일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의 난 잘못 살지 않았다.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자'고 되뇌며 산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고, 나중에 또 돌아봐도 부끄럽지 않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 덕분에 일 욕심을 얻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일의 성취감을 알았다. 못하면 쪽팔린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 직업을 돈 때문에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시 깨달았다. 연기가 오래 하고 싶어 졌다"며 "롤모델도 생겼다. 지금까지는 항상 롤모델은 마땅히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김희애 선배를 곁에서 지켜봤다. 처음으로 선망의 대상이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고민이 정말 많아졌어요. 여기서 퇴보하고 싶지 않거든요.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일단 여다경을 내 마음속에서 지우고 찬찬히 고민하려고요. 감사합니다."



iMBC 이호영 | 사진 9아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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