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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터뷰] 이정은, 늦게 성공해 천만다행이라는 배우

기사입력2019-12-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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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49)은 내내 연기자의 길을 걷다가 반백살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러 빛을 봤다. 들인 공의 크기는 한결같았으나, 이제야 시기와 운이 맞아 들었다고. 뒤늦게 찾아온 상한선이 야속할 법도 하다만, 돌아보니 오히려 천만다행이란다. "애초부터 탄탄대로만 밟았다면, 고생 모르고 자만했을 스스로의 간사함이 훤하기 때문"이라며 고개 숙이는 그다.

1년 전 tvN '미스터 션샤인' 함안댁으로 대중의 뇌리에 확실한 각인을 남긴 이정은. 2019년에도 어김없이 기운을 이어받아 만개했다. 특히 올해는 그의 연기 인생 중 가장 빛나는 한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JTBC '눈이 부시게'를 시작으로 OCN '타인은 지옥이다'를 거쳐 영화 '기생충'과 '미성년'까지 섭렵했다. 결국 KBS2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정점을 찍고 말았다.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엄마 정숙으로 활약했다. 정숙은 어린 시절 굶주리는 딸을 보육원에 맡기고 떠났다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 느닷없이 딸을 찾아온 인물.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겨 작품 속 미스터리의 한축을 맡았고, 문득문득 코믹한 대사와 능청스러운 연기로 웃음도 줬다. 말미에는 진한 모성애로 절절한 감동까지 전한 이정은이다.

iMBC 연예뉴스 사진

Q. '동백꽃 필 무렵'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A. 임상춘 작가의 작품 '쌈 마이웨이'에 이어 두 번째 인연이다. 당시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6부에 이르러 등장했다. 시청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Q. 아직 미혼이고, 자식도 없는 와중 모성애를 표현해야 했다.

A.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 '내가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어떨까'라고 대입하기도 했다. 작품 속 어머니는 여타 미디어 속 모성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도 했다. 낳은 자식에 대한 책임을 고민하는 인물이라는 남다른 서사에 집중했다.

Q. 연쇄살인범 '까불이'로 의심받기도 했다.


A. 생각도 못했다. 서운했다.(웃음) 자식 버리고 도망친 엄마의 서러움이었다. '타인은 지옥이다'와 '기생충'의 섬뜩한 이미지가 남아있었나 보다. 많이들 추측하고 의심해주시더라. 작품 전체의 재미 중 하나로 생각하니, 긍정적으로 이해됐다. 연출진과 스릴러적인 요소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홑꺼풀의 눈으로 약간 째려보며 카메라 각도를 옆으로 하니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Q. 엉뚱한 말로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순간순간 대사에 진한 모성을 묻혀 표현하더라.

A. 웃길 때 제대로 웃기고, 울릴 때 덤덤하게 울리자고 생각했다. 대본이 완벽에 가까워 글 자체로도 충분히 웃기고, 슬펐다. 멍하게 치매 연기를 해 웃음을 유발하다가, 진지한 대사는 덤덤하게 씹어 뱉었다. 모성과 관련한 대사를 지르밟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정숙이 동백에게 전하는 말이 금은보화처럼 소중하다 여겼다. 붕 떠있다가도 그 대사를 뱉을 때에는 절로 몰입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Q.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A. 공효진은 건강한 배우다. 주인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지닌 파워를 제대로 갖췄다. 연기는 두 말할 것 없다. 물 흐르듯 하는 사람이다. 그의 대사가 나의 리액션을 결정지었다. 괜히 공효진이겠나.

강하늘은 뮤지컬을 통해 만났었다. 여전히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사위 삼고 싶은 사람이다. 용식이 역할에 제대로 어울렸다. 제대 이후에는 능글맞음까지 갖췄더라. 공효진의 아들 필구를 연기한 아역 김강훈은 천재다. 작품의 영감을 시청자에 오롯이 전달했다. 크게 될 나무라고 생각한다.

Q.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전성기를 실감하나?

A. 물론이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시절 중 가장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지하철을 타면 많이들 알아보신다. 몰래 사진도 찍어주시더라. 가장 기쁜 건 외진 시골 마을에 내려갈 때다. 그들은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으로 척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알아봐 주더라. '기생충'을 언급하시더라. 그런 분들을 위해 더욱 힘내서 문화창작에 기여해야겠더라.

Q.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은' 성공이다.

A. 그래서 아주 좋다. 난 간사한 사람이다. 얄팍한 마음을 가진 주제에 조금 더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면, 자만했을 것이다. 연극 무대를 전전하던 시절에 가끔 관객 호응이 들려오면 어깨가 올라갔던 나다. 지금은 아주 침착할 자신 있고,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업적을 살피며 자신감을 얻는 것도 누군가의 방식이겠으나, 나와 맞지는 않더라. 그런 의미에서 받은 상은 모두 부모님 댁에 뒀다. 내 방에 줄 세워두지 않는다.

Q. 긴 터널을 지나오며 조바심이나 열등을 느끼진 않았나?

A. 물론이다.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절친한 친구 중에 대표적으로 황석정이 있다. 나보다 한참 전에 빛을 본 친구다. 열등이나 조바심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승복할 수밖에 없는 실력자다. 이유가 있는 성공이었다. 황석정은 연극 '햄릿'에서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졸도를 했었다. 나의 옛날 연기를 살펴 그들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발전이 늦은 내 탓이다. 잘해서 잘된 사람을 쫓아갈 궁리하며 스스로 다스렸다.

Q. 포기하고 싶던 순간은 있나?

A. 없다. 난 바닥을 치게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다. 즐거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웃음) 물론 돈 때문에 서러워본 기억은 있다. 학교 시간강사 일을 해 연기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포기했었다. 누군가 가르치려면 내 연기가 월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간을 쪼개며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무슨 실력이 늘겠나 싶어 관뒀다. 돈을 꿔가며 연기했다. 하지만, 저질러놓으니 더욱 열심히 하게 되더라.(웃음)

iMBC 연예뉴스 사진

Q. 연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A. 물론이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 중에 김수진이라는 배우가 있다. 배우들끼리 간혹 직업에 대한 우울감을 이야기하곤 한다. 서로 힘들던 당시 수진이가 흔들리자 '계속해봐. 나도 계속할 거야'라고 했다더라. 그때도 천직이라는 걸 직감하고 살았나 보다. 누군가 '언제 연기가 재밌어?'라고 묻더라. 장면마다 재밌다. 한 장면을 촬영하는데, 잘 풀린다 싶으면 쾌감이 대단하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가 갈수록 뚜렷해진다.

Q. 연기를 위해 지키며 사는 신념이 있나?

A. 균형을 잡는다. 무명이 길어서 잘 잡힌다. 관심받지 못하던 당시에도 나는 연기를 좋아했다. 관심의 크기에 비례해 연기에 대한 열정의 척도가 판가름 나지 않게 균형 잡고 산다. 긍정한다. 어떻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보고사나. 나 같은 사람도 나와줘야 취향을 존중할 수 있는 거 아닌가.(웃음) 매사 조연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누군가를 돕는 역할이라는 말이 얼마나 감사하고 듣기 좋은가.


iMBC 이호영 |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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