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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기억'에 대한 영화 '13년의 공백' ★★★☆

외화홈페이지 2019-06-28 13:41
[애프터스크리닝]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기억'에 대한 영화 '13년의 공백' ★★★☆

▶줄거리

코지(타카하시 잇세이)의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는 13년 전 집을 나갔다. 도박에 빠져 빚을 지고 사채업자들이 집까지 찾아오게 만들었던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에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 요코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이어야 했고, 신문배달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도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화장으로 가리고 저녁 일을 나간다.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야 했던 코지와 형 타쿠미(마츠다)에게 아버지란 유년에 캐치볼을 하던 기억과 도박을 하던 뒷모습 등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기억으로 혼재되어 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연락이 13년만에 전해온다. 암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연락이다. 코지가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지만 오랜만에 만난 부자는 서로 나눌 말이 없다. 얼마 후 아버지의 죽음 후 장례를 진행하던 형제는 13년간 아버지의 행적을 기억하는 주변인들의 '기억'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


▶비포 스크리닝
배우 사이토 타쿠미의 감독 데뷔작이다. '13년의 공백'은 '기억'에 대한 영화다. 빚에 쫓기고 도박을 하다 집을 나간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리 없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한 기억이 나쁜 것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함께 캐치볼도 해주고 '야구선수'라는 꿈을 응원도 해주었던 아버지다. 무책임한 가부장에 대해 쉽고 뻔한 접근을 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도 여러 일면이 있으며 그가 남기는 기억도 여러 모습일 수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은 릴리 프랭키의 깊은 눈매다. '기억'과 '감정'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소재를 풀어내는 연출은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섬세하다. 죽은 남편에 대한 회한을 연기하는 요코 역할의 칸노 미스즈의 연기 또한 주목해야 한다.


▶애프터 스크리닝
장례식 풍경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 이후로 영화 시작 후 타이틀이 뜨기까지 무려 30분의 시간이 흐른다. 같은 일을 겪고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고, 분명 안 좋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대에 대한 상황에서도 좋았던 기억은 드문드문 피어오를 수 있다.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 장면들은 옛 일본 영화의 필름을 살려낸 것처럼 아련해서 감정을 움직인다. 아버지 없이 자란 소년들은 어른이 되고 어렵게 용기를 내 만나러 간 아버지는 '네가 야구선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교야구 TV경기를 봤다"고 말하지만, 그런 한마디 말로 원망이 지워지진 않는다.


아버지 장례식장에 모인 손님들의 면면은 그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데 빠칭코에서 만났다는 친구, 술집 종업원, 같은 병실에 있었다는 환자, 종교집단에서 빠져나왔다는 청년 등등이 그들이다. 그리움, 원망이 섞여 이제는 무감각해져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타인들이 기억하는 '좋은 아버지의 기억'을 들으며 코지와 마츠다의 표정 역시 점차 변해간다. 아버지가 알고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는 결말을 향해 달리는 뻔한 영화는 아니다. '13년의 공백'은 그보다는 '싫은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과 기억'을 그보다 복잡하게 보여주고 무엇과 무엇 사이 공백에 있는 슬픔을 보여준다. 그리워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고, 밉지만 사랑하고 싶었던 가족 구성원이 있었던 이라면 누구나 감정을 이입할 지점이 있는 영화일 것이다.

iMBC 김송희 | 사진 영화사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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