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푸터(고객센터 등) 바로가기

[人스타] 봉준호 “거장? 난 아직 49.8세의 젊은 감독, 계속해서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다”

기사입력2019-06-02 08:00
  • 트위터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링크 복사하기
지난 29일 영화 ‘기생충’으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귀국 당시 공항 패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타일이었지만 눈빛만은 반짝반짝 개구쟁이 같이 빛나는 봉준호 감독은 작품의 해석이나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쫑긋하며 집중해서 듣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스마트하고 솔직한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수상 축하 드린다. 큰 상을 받고 돌아오셨는데 잠은 푹 주무셨나?

A. 27일 오후에 귀국해서 그날 밤 새벽부터 오전까지 상영관 사운드 체크를 했다. 28일이 국내 언론시사여서 상영관들을 돌아봤던 거고, 그리고 낮 12시부터 각종 인터뷰들 진행하고, 시사회도 하고, 시사회 후에는 뒷풀이고 하고 오늘 이 자리에 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싶다. 정확하게 시간대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잠을 많이는 못 잤다.

Q. 어제 시사회 뒷풀이 분위기는 어땠나?
A. 여러분들이 오셔서 많이 축하해 주셨다. 영화보고 울었다는 분들이 많더라. 영화 어땠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울었다는 분이 많아서 인상적이었고 그런 반응이 너무 좋았다. 감정을 같이 나눈 거니까. 분명 슬픔이 좀 있는데, 아련한 슬픔이랄까? 최우식의 모습을 봤을 때는 많이 슬프다.

Q. 칸에서 처음 호명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
A. 실족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2015년에 발목 골절로 휠체어를 탄 적이 있다. 발목이 부실한데 실족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계단을 침착히 올라갔고, 옆에 있던 송강호와 제작자에게 같이 가자고 손짓해서 함께 올라가서는 급한 불부터 끈다는 생각으로 스피치를 했다. 통역 하시는 분이 계신데, 통역을 하시는 동안 시간을 벌어서 다음 스텝을 정리할 여유가 생기더라. 수상 소감으로는 다른 분들이 불어를 준비해와서 나도 어쩐지 불어를 한 두개 해야 했는데 메르시 말고는 아는 불어가 없어서 위대한 프랑스 감독의 이름을 언급했다.


Q. 송강호 배우가 남우 주연상의 후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A. 심사위원 중의 한 분이 만장일치로 쉽게 빨리 ‘기생충’이 황금종려가 결정 되었는데 송강호 떄문에 아까웠다고 하더라. 황금종려를 받는 작품은 배우들의 상을 중복해서 수상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 규정이 있어서 송강호의 연기가 좋았지만 배우상을 줄 수 없었다며, 다른 심사위원들이 엄청 칭찬했고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 해 주시더라.

Q. 이후 송강호에게 상패를 주셨더라.
A. 시상식 장이 아니라 야외의 포토콜 장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포토콜 장소는 시상식 장과 분위기가 다르게 캐주얼한 분위기다. 그래서 뻘쭘히 서서 찍다 보면 여러 포즈를 해 달라고 요구도 많고 시간도 길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분위기다.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고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다.

Q. 영화제에 가셔서 다른 감독의 작품도 많이 보셨나?
A. 제일 보고 싶었던 작품은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과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작품이었는데 시간이 안 돼서 못 봤다. ‘기생충’의 프랑스 개봉이 6월 5일로 빠듯하게 잡혀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프랑스 배급사가 저를 칸 영화제 끝나고 프랑스에서 프로모션을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내일 한국에서 개봉이라 저는 바로 한국에 와야 해서 별도 프로모션에서 해야 할 매체 프로모션을 칸 영화제 기간 동안 다 소화했었다. 그걸 하다 보니까 점점 좀비처럼 되어 갔지만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Q. 그렇게 바쁘게 일정 보내시고 귀국하자 마자 쉬지도 않으시고 극장 사운드 체크를 하셨나?
A. 언론시사를 한 용산은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좋고 퀄리티도 좋았다. 저나 촬영 감독, 사운드 감독은 엄청 미세하게 붙들며 작업을 하는데 막상 극장에 가게 되면 극장의 시설 때문에 디테일이 뭉개지거나 소리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많더라. 그게 너무 아쉬웠다. 국가적인 시험을 통해서 극장의 화질, 음질 공인 관리사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서 만드는 이들이 의도한 사운드와 화면이 관객에게 최종적으로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정도다. (웃음) 영화의 시작에 종소리가 들릴 텐데 그건 극장 체크용 종소리다. ‘옥자’때부터 시작하는 시점에 종소리를 넣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운드 체크다. 큰 종부터 작은 종까지 차례로 돌아가며 들리는데 어떤 하나가 엄청 작게 들리거나 안 들린다면 잽싸게 항의하고 알려야 한다. (웃음) 종소리는 마치 미사나 수업이 시작되는 그런 느낌도 들지 않나? 앞으로의 영화에도 계속 넣을 것이다.


Q. 칸에 가시기 전 국내에서 제작보고회를 했을 때 너무나 한국적인 작품이라 칸의 관객들이 이해하기 힘들거라 하셨는데 칸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A. 이게 100% 이해 하지 못 한다는 게 아니라 90% 정도 이해할 거라는 의미였다. 한국의 기자회견이었고 많은 분들이 와 주셨는데 그분들과 다 같이 프리미어에 가서 볼 수 없는 상황이고, 칸에 초청되어서 외국에서 먼저 틀게 되었으니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아서 약간 미안한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한국 관객과 같이 킥킥거리면서 제대로 즐기고 싶었고 그게 첫 상영의 느낌이 들거라는 말이었고, 해외에서 먼저 트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과하게 표현했었다. 영화 자체의 주제는 보편적이었다. 가난한 자와 부자의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였고 워낙 배우들이 설득력 있게 표현해 주셔서 외국 관객들은 폭소와 중간에 박수도 치면서 즐기더라. 칸에서 상을 받는 바람에 한국에서 상영할 때는 화면 앞에 무슨무슨 수상작이라고 표시해서 상영해야 하는게 의무사항이다. 그 바람에 몰랐던 분들도 수상 내용을 알게 되실 것 같다. 너무 기사가 많이 나가고 국가적 경사로 다뤄지고 있고 대통령이 축전도 보내주셔서 영광스러운데 어찌 보면 배부른 투정 같지만 영화제 수상작이어서 난해하고 고고한 예술적인 향취로 무장한 영화라고 생각 하실까 걱정되긴 한다. 여러 희로애락에 다양한 인간적 감정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사실 칸은 순수한 의미의 관객은 없고 다들 업계 관계자들이 자리를 채웠던 거다. 정말 순수한 관객은 한국 관객들이다.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걱정된다. 추임새도 많이 넣고 말을 많이 하면서 보는 관객 사이에 숨어서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

Q. ‘독도는 우리땅’을 활용한 대사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 부분에서도 외국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고 하더라.
A. ‘독도는 우리땅’ 멜로디는 정식으로 판권을 구매해서 썼다. 시나리오 쓸 때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라고 그 멜로디에 맞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리 판권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템포와 단어 등 미리 짜맞춘 게 있으니까 그 곡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만한 노래가 어디 있겠나? 다시 들어보니까 가사가 압권이더라. 저는 어릴 때 뭘 암기해야 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었다. 지리시간에 수도 외우는 노래를 많이 했었고, 외국에도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런식으로 외우던 그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웃었던 것 같다.


Q. 송강호씨의 연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여배우들의 찰진 연기가 너무 좋았다. 조여정의 새로운 모습도 절묘했고 이정은 배우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렇게 찰떡 같은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 하신 건가?

A. 캐스팅 할 때 많은 고민이 있었다. 조여정에 관해서는, 그분의 모든 드라마를 보지는 못 했는데 ‘인간중독’에서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장교 부인들의 시퀀스가 재미있고 되게 웃기기도 하고 대사의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가 본 것 보다 훨씬 더 큰 폭과 깊이를 가진 배우라는 확신이 들었고 스펙트럼이 넓은 많은 커리어를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여정이 연기한 캐릭터는 외적인 느낌으로도 맑고 잘 속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멍청하거나 우둔해 보이면 안된다. 맑고 통통 튀는데 의외로 사람을 잘 믿는, 총명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람을 잘 믿는 그런 역할에 적격이었다.
이정은 배우는 같이 작업을 한 지 10여년이 되었다. 처음에 ‘빨래’라는 뮤지컬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후 제 작품 ‘마더’에서 김혜자의 멱살을 잡는 역할, ‘옥자’에서는 옥자의 감정을 목소리로 표현하셨다. 이정은은 목소리의 마술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의 표현력이나 음색을 변화 시키는게 자연스럽고 목소리 만으로도 온갖 감정의 변화를 다 표현해 내는 배우다. 우리 영화에서 ‘문광’이 엄청 중요한 인물인데 이 역할은 이정은만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박소담은 연기 잘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되게 정확하고 섬세한 연기를 한다. 스토리의 흐름이 요구하는 걸 너무 잘 메꿔준다. 축구로 치면 이영표나 박지성을 섞어 놓은 느낌 이랄까. 전체 팀 플레이의 구석구석을 다 메꿔주는 그런 느낌이다. 골대 앞에서만 얼쩡거리는 선수가 아닌 느낌이었다. 조여정을 갖고 노는 듯한 씬에서 박소담 만이 표현할 수 있는 눈빛이 있었다. 조여정, 박소담 모두 예쁜 눈인데 예쁨의 방식이 달라서 좋았다. 두 사람의 눈빛의 느낌이 대조되는 것이 좋았다.

Q. 뮤지컬이나 연극을 통해 새로운 배우들을 종종 찾으시나 보다.
A. 연극 자체를 좋아한다. 이정은 배우도 창작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가서 알게 되었는데, 공연을 보다 보면 배우들도 보이게 되더라. 연극 보러 갈 때 좀 불편하기도 하다. 제가 왔다 그러면 배우들이 평소대로 공연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고 저도 불편하다. 예전에 객석에 봉준호, 박찬욱이 앉아 있다는 개그까지 나올 정도였다. 티 안나게 조용히 가서 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Q. 영화에서 물이 많이 사용되었다.
A. 물을 중요하게 썼다. 처음에는 방뇨하려는 남자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그 남자를 향해 물을 뿌리며, 점점 비로 바뀌고 거대한 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직적 공간의 배열이 나온다. 계층이나 계급이 수직적 배열인데 비도 수직으로 내리고 물도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영화 자체의 설계와 잘 맞는다. 빗속에서 보여지는 로드무비 부분에서는 인물들도 하강의 흐름을 보여주고 사람과 물이 점점 같이 아래로 간다. 그 물이 절대 역류를 못 한다는 게 서글프다. 부자에서 가난 쪽으로 흙탕물이 흘러간다.

Q.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참 여운을 많이 주더라. 엔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A. 희망적인 단초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고, 섣불리 희망을 말했다가는 그게 되려 거짓말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시대의 모습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지금의 엔딩을 결정했다. 주인공이 희망을 품으려고는 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입장은 되게 슬프다. 그 슬픔을 머금고 영화가 끝나길 바랬고, 그게 시대를 반영하는 창작자로서의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장면은 아닌데 엔딩 크레딧에 최우식의 노래가 흐른다. 노래 가사도 장미빛 희망은 아니지만 꿈틀꿈틀 살아간다는 느낌을 담고 있고 음악의 톤도 묘한 낙관성이 있다. 주인공의 마지막 목소리 같은 것인데, 그 노래를 들으시려면 관객들이 끝까지 앉아 계셔야 한다.

Q.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허투로 쓰인 게 없더라. 작품을 위해 평소에 어떤 노력들을 하시는가?
A. 영화와 만화를 많이 본다. 책은 주로 영화 감독에 관한 책이나 영화에 관한 책들을 본다. 저만의 독특한 뭔가는 없는데 일상적인 것에서 더듬이를 세우고 예민함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식당에서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옆 테이블 사람의 대화라던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에서 얻어지는 아이디어나 자극들도 많다.

Q.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기대감은 계속 높아질 텐데 ‘기생충’ 이후의 작품은 어떤 것들이 계획되어 있나?
A. 뮌헨에서 저의 전작전을 한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다가도 불안하다.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데 뭔가 이룬 감독 내지는 이것이 제 경력의 정점처럼 될까봐 싫다. 아직 50대가 아니다. 서양식 카운트로는 49.8세인데 아직 젊은 40대 감독으로 이제 시작이다. 칸은 이미 과거라는 표현도 했었는데 이게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고 계속 모험적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다음 작품으로는 이미 계약된 미국 작품이 있고 그 다음에 한국에서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작품을 할 예정이다. 액션이 될 수도 있고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