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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김은희 작가 “내 나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회 이슈가 담긴 작품 한다”

기사입력2019-01-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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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작가이자 이미 장르물의 대명사인 김은희 작가를 만났다. 긴장되고 떨려서 횡설수설하고 있다며 수줍어 하는 김은희 작가의 답변은 의외로 유머가 넘쳐서 인터뷰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간결한 답변 안에는 많은 의미와 생각들이 숨어져 있었다. '킹덤'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놓은 김은희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리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살펴보셨나?

A. 제가 겁 많고 소심해서 상처 입을 까봐 기사를 자세히 안 보고 헤드라인만 봤다. 또 가족들 통해 괜찮았는지 물어봤다. 시그널 이후 거의 3년만이어서 이런 집중과 관심이 굉장히 낯설고 긴장된다.

Q. 넷플릭스와는 어떻게 일이 시작된 건가?
A. ‘킹덤’ 때문에 만난 건 아니었다. ‘시그널’ 끝나고 어쩌다가 넷플릭스 직원과 만났고, 같이 일할 의향이 있냐고 묻더라. 제가 2011년부터 좀비라는 크리처에 대한 작품을 너무 하고 싶었어서 오히려 ‘이런 건 어떻냐?’라고 역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Q. 넷플릭스가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했는데, 정작 해 보시니 어떠신가?
A 원 없이 만들었다. 저는 넷플릭스 사람들이 한국말을 못 해서 간섭이 없나 싶을 정도로 작품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었다. 화상회의를 많이 하긴 했는데 ‘뒷 이야기는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 우리가 오히려 ‘이런 장면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보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늘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쓰라’는 것이었다. 저는 걱정이 되서 ‘대본이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항상 헐리우드 리액션으로 재미있다고 해줘서 굉장히 예의가 바른 사람들인가도 싶었다. 1부 대본을 보고 나서는 ‘생사초는 어떤 풀이냐?’는 질문을 해줬고, 앞으로 이 병은 어떻게 되고, 세자는 어떻게 되고, 다른 좀비들과 다른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듣고 싶어 했다.


Q.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시는 분인데 작품의 소재가 ‘좀비’라니, 특이했다. 왜 좀비였나?
A. 좀비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좀비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슬퍼보이는 대상이었다. 다른 욕망들은 모두 거세된 채 식탐만 남은 크리처가 통제가 불가능한 조선시대에 등장한다면 뭔가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좀비들을 통해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8명의 식구가 손바닥보다 작은 조기 한 마리를 놓고 싸운다면 누가 조기를 차지할 수 있을까? 시대적인 분위기로는 유교사상 때문에 제일 손 윗 사람이 제일 많이 먹었겠지만 실상은 가장 빨라야만 먹을 수 있을 것 아니냐. 언제나 배고픔에 지쳐있던 이웃들이 그런 병에 걸린다면… 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Q. 생각했던 대로 좀비를 조선시대로 옮겨 두시긴 했는데, 첫 사극이라 힘들지 않았나?

A. 많이 어려웠다. 현대극은 자료조사를 하면서 실제적인 공간감을 가질 수 있는데 사극은 '벌판'이나 '다리' 이런식으로 공간을 설정하게 되니까 특색 있는 지역을 찾는 게 힘들더라. 사극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하도 수사극을 많이 하다 보니 CCTV와 핸드폰이 없는 곳이 찾고 싶어서였는데 의외로 대본을 쓰면서 힘든 게 많더라. 특히 차가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말을 타도 역병 환자들이 덥치면 끝이라서 확실하게 빨리 멀리 피해갈 방도가 없어 보여서 ‘내가 왜 이랬을까!’ 싶었다.

Q. ‘킹덤’을 통해서 한옥의 툇마루 아래에 그렇게 공간이 많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A. 평소에 한옥 구조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그해 여름’이라는 영화의 각본을 썼었는데 그 영화도 한옥에서 벌어진 이야기고, 중간중간 고택을 찾아 보러 다닌 적도 있었다. 툇마루 아래의 공간은 한번도 나와본 적이 없더라. 한옥의 구조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설정 해 봤다.

Q. 시즌 1의 6편을 너무 금방 봤다. 1편의 러닝타임이 50분이더라. 원래 기획했던 이야기는 몇 부작 분량이었나?
A. 몇 년 전부터 여러 버전으로 진행됐던 상황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8부작 정도로 생각 했던 것 같다. 좀 더 집약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였는데 전체적으로 12부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는 16부작이 익숙해서인지 지금 시즌 1의 진행 상황을 보면 3부 절반 정도까지 온 것 같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한 시즌의 분량도 그렇고 회차당의 시간도 짧을 수록 좋아하더라. 정주행을 많이 하는 플랫폼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Q. 그래서 시즌 2는 언제 공개되나? 시즌 1을 순식간에 정주행 하고 나니 너무 허탈하다.
A. 대본은 이미 탈고 했고. 아마도 2월 초에 촬영이 시작될 것 같다. 6월쯤 촬영이 끝날 것 같은데. 넷플릭스가 후반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다. 시즌 1의 경우도 작년 5월에 촬영이 끝났고 올해 초에 공개되지 않았나. 시즌 2의 공개 시점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넷플릭스에서 공개하지 않을까? 시즌 2를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시즌 1에서 던져 놓은 떡밥들이 많았다. 안현대감은 어떤 인물인지, 영신은 어떤 아이인지가 시즌2에서 펼쳐질 것이고 시즌 2의 엔딩을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좀 더 큰 세계관으로 펼칠 생각이 있다.

Q. 시즌 3까지 고려하시는 건가?
A. 마음속으로는 제작비만 주신다면, 점점 이야기들을 뻗쳐 나가고 싶다. 특히 동남아는 같은 문화권이기에 이야기를 충분히 확장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Q. 사전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A. 쓰는 입장에서는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 보니 ‘이게 맞나? 템포감이 맞나?’ 싶더라. 시즌 1의 결과물을 확인하기도 전에 시즌 2의 대본을 썼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퀄리티를 위해서는 장르물은 사전제작이 맞는 것 같다.


Q. 기존에 많은 좀비물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도 ‘부산행’과 ‘창궐’까지. 김은희 표 좀비는 무엇이 다른가?

A. 많은 좀비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좀비도 있었는데 저는 한국적인, 우리만의 좀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사초라는 풀의 설정을 가져왔다. 이 풀로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지만 이 생명체는 오로지 먹고 사는 욕구밖에 없다. 생명체에게 물린 사람은 전염되지 않고 그냥 죽지만 생명체에게 물린 사람의 인육을 다른 사람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역병이 시작된다. 또 다른 설정은 온도 차이다. 이와 관련된 건 시즌 2에서 자세하게 보여질 것이다. 결국은 익숙함에 대해 변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운걸 던지면 그게 뭔지 알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이 역병은 전염이 안 되는 데 탐욕과 역병이 만나면서 전염이 되기 시작하는 걸로 변화를 줬다.

Q. ‘킹덤’의 배우들 캐스팅에는 얼마나 관여하셨나?
A. 주연 배우 정도만 관여하고 다른 캐스팅은 감독님이 권한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캐릭터 마다 이 캐릭터는 어떤 인물이기에 어떤 이미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영신 역할도 그랬다.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너무 많이 목도했던, 하지만 힘있는 민초 역할의 영신을 김성규 배우가 너무 잘 연기해줬고 감독님의 캐스팅이 훌륭했다. 물론 영신이라는 존재 때문에 역병이 시작되기도 해서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바로 죄책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에 합류해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제가 대본을 쓰면서도 제일 멋있는 역할이라 생각했었다. 그의 비하인드는 시즌2에 나온다.

Q. 김성훈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A. 원래 저와 사이도 좋고 친하기도 했는데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정말 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다. 세세한 것 하나도 자기가 모르면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더라. 제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던 기획의도와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를 최대한 많이 읽어 내시려 했고, 많은 대화를 통해 생각의 차이를 좁혀 나갔다. 타이틀 영상을 보고 박수를 쳐 드렸다. 그것만 봐도 서로의 생각이 잘 일치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잘 찍었더라.

Q. 남편인 장항준 감독은 어떻게 외조를 해 주셨나? 요즘 방송에서 장항준 감독이 김은희 작가 이야기를 엄청 하시더라.
A. 장항준 감독은 대본을 한 번도 안 봤다. 옆에서 술 사주는 거 정도로 외조를 해줬다. 아무래도 일에서 선배이다 보니 “회의 할 때 이런 게 답답했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원래 그러라고 돈 받는 거 아니냐” 같은 현실적인 말을 해 주면서 심리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응원을 해 준다. 제가 사실은 장항준과 사수, 부사수의 관계였다. 그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작가가 안 됐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나 싶다.

Q. ‘킹덤’의 시즌 2를 기다리는 분들도 많지만 그만큼 ‘시그널’의 시즌 2도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 계획이 있으신가?
A. 쓰기 시작하긴 했다. 쓰고는 있는데 제가 열심히 잘 써야 보여드릴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아무리 대단한 연출가나 대단한 배우가 있더라도 재미없는 대본이면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이렇게 작품 홍보 일정이 있는 거 아니면 거의 노트북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을 떠나지 않는다. 쓰는 건 너무 힘든데 노트북 앞을 떠나는 건 더 힘들다.

Q. 혹시 다른 장르물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A. 관심 많다. SF도 하고 싶고 호러도 하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만 빼고 다 하고 싶다. 세상에 과연 진짜 사랑이 있나?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더 잘 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으시니 저는 그거 말고 다른 걸 잘 하고 싶다.

Q.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작품들을 주로 하신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어떤 작품을 해도 다 저 같은 작품이 나오더라. 제가 아는 것만큼 대본이 나오는 것 같아서 더 새로운 소재도 찾아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 제 나이가 이제 50이 가까워져 오는데 예전에 배철수가 했던 말이 있다. 나이 40이 넘으면 ‘세상이 왜 이래?’라고 남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안 된다고. 이 세상을 만드는 데 내가 알게 모르게 일조한 것이다 보니 조금의 죄책감도 있고, 그래서 더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Q. 김은희 작가를 롤 모델로 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노하우를 알려 주신다면?
A.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더라. 생각보다 단막극 하나도 끝을 못 맺는 사람이 많더라. 엉망이더라도 시작을 했다면 끝을 맺을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정도의 인성만 있다면 스킬은 많이 보면 배울 수 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며 그걸 조금씩 꾸준히 채워가는 게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킹덤’은 김은희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A. 2011년부터 꿈꿨던,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던 좀비 사극을 현실화 시켰다는 게 뜻 깊다.


iMBC 김경희 | 사진 이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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