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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유해진 “세월을 잘 묻히면서 살고 싶다”(feat. 내가 한 말이지만 표현이 기가 막히죠?)

기사입력2018-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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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첫 한국 영화 '말모이'로 관객을 만날 유해진을 만났다. 대체불가하며 기본 흥행은 깔고 가는 배우이고 어떤 역할이건 인간미가 흘러 넘치게 소화해 내는 배우 유해진은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특유의 유머 코드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빨아 들였다. 저렇게 여유롭고 위트 있게 확고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다니, 정말 부러운 사람이었다.


Q. 영화 '말모이'의 완성본을 본 소감은 어떠신가?

A. 아직 작품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너무 뻔히 아는 상태에서 봐서 좀 더 시간이 있어야 '이 영화는 어땠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현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감독님, 촬영기사와도 좋았다. 아직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기는 힘들다. 아쉬운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다.

Q. 어떤 부분이 좋으셨나?
A. 한 인물의 변화를 통해 한글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 내년도의 첫 영화인데 순하게 출발하는 것 같아서 저는 좋더라. 떡국 같기도, 순두부 같기도 한 느낌이 영화다.

Q. 극중에 자식들로 나왔던 순이와 덕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닮기도 했더라.
A. 순이(박예나)는 너무 귀엽고 이쁜 아이다. 순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목화솜, 솜사탕, 탈지면 등이 있었는데 오늘은 백설기가 생각난다. 아이가 떄 묻지 않는 수줍음이 많고 낯 가릴 때의 모습, 붙임성이 좋지 않은데 외부 사람에게 낯 가리는 딸 같은 느낌이 좋았다. 덕진(조현도)이 역할을 한 아들도 너무 좋았다. 아이들이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기도 잘하면서 이쁘고 착하면 더 좋지 않느냐. 얼마나 예의도 바르고 아이가 착한지, 그런 면에서 더 정이 많이 갔다. 우리 영화가 아역들을 잘 캐스팅 한 것 같다. 예나의 핫 아이템이 스티커였는데 그걸 아무한테나 붙여주지 않고 꼭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붙여 주던데, 저는 받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예나가 비지니스를 위해 스티커를 붙이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더라.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빠 역할이었던 현도는 제일 처음으로 스티커를 받았다. 둘이 너무 잘 지내더라. 현도가 친동생 챙기듯이 이야기도 계속 해 주고 가까이 지내더라.
영화에 같이 출연했던 선영씨가 또 딸을 키워서 그런지 예나의 마음을 너무 잘 읽더라. 예나한테 스티커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저한테 이야기 해줬고, 다음에 촬영장 올 때는 직접 스티커를 사다 주기도 하더라. 극중 학회 사람들도 즐겁게 보냈다. 연기라는 게 서로 맞춰서 좋은 효과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좋은 분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연결 될 거라 생각한다.


Q. 학회분들 중에 김홍파 배우가 이번에는 굉장히 순하게 나오시더라.
A. 실제로도 술 좋아하고 사람 좋은 분이다. 기본적으로 순하신 분이다. 극단 때부터 그랬다. 독하고 나쁜 악역을 많이 해서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실은 순한 모습이 더 많으신 분이다.

Q. 윤계상 배우가 인터뷰를 하면서 유해진 배우 때문에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도 하고 유해진의 연기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
A. 하도 인터뷰에서 윤계상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서 약간 오그라들 때가 있다. 윤계상의 말이 사실이든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든 기분 좋고 고맙다. 윤계상과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세월을 잘 묻히고 가는 느낌이다. 야 이 표현 기가 막히는데? 그쵸? (웃음) 제가 제일 안타까워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예전에는 약간 겉도는 게 느껴졌었다. 자기를 사실적으로 열어 놓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이제는 더 깊이 있어지고 또 반가운 건 술을 잘 먹는 거더라. 술 한잔 하면서 자기를 더 열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서로 소통을 많이 하려고 하더라.


Q. 윤계상에 의하면 유해진 배우는 한 장면에 대해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해 온다고 하더라.

A. 모든 장면을 여러 번 찍는 건 아니고 애매한 차이가 있을 때만 그런다. 보통 감독님이 먼저 제안하시는데 배우가 먼저 이야기 할 때도 있다. '완전히 파란 게 좋아? 희끄무레한 파란게 좋아?' 처럼 차이가 있을 때가 있지 않나.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가 고민스러울 때 좀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갈 때가 있다.

Q. 이번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썼던 감독과의 인연 때문인가?
A. 오히려 제작사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때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쓰고 있다고 이야기 해서 저는 의례 하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실제라고 하길래 놀랬다. 말 맛을 잘 살릴 것 같아서 저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하더라. 누군가 저를 생각하고 썼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일이어서 읽어 봤더니 한 사람의 성장이기도 하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출연하게 되었다.


Q. 유해진만의 '말 맛'이라는 건 어떤 걸까?
A. 글쎄 제 목소리가 걸쭉하기도 하고, 판소리와 조금 비슷하게 구성지게 말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신 건지 잘 모르겠다.

Q. 한글 사랑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
A. 인터뷰하다가 문득 생각났는데, 제가 사전을 참 좋아했다. 사전 안의 내용을 잘 알고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사전 자체를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에 보니까 사전이 없어졌더라. 그래서 어제 교보문고에 가서 새국어사전을 큰걸 하나 샀다. 몇 번을 볼지 모르겠지만 약간 양심의 짐은 덜었고, 사길 잘 한 것 같다. 어제 사서 쭉 넘겨보기만 했는데 이따 집에 가서는 말모이에 대해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Q. 영화 속에 손 편지 장면이 나오던데 직접 쓰신 거라고?
A. 내용은 대본에 있는 거였고 글씨는 직접 썼다. 감정씬이고 중요한 장면이라서 미술팀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 한 게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걸 쓸 때도 그랬는데 많이 짠했다. 청계천에 있는 극장에서 찍은 장면인데, 내레이션이 들어갈 동안의 이미지가 많이 떠올라서 눈시울 붉히며 촬영했었다.
영화 속에 흥얼거리는 노래도 제가 직접 작사 작곡 한 거다. '노다지를 캐면은 황소를 사고 노다지를 캐면은 술을 사먹자~' 같은 내용이었는데 시대에 어울릴 것 같은 내용으로 만들었다. 촬영하면서 모두가 배를 잡았다. 그런 걸 어디서 갖고 왔냐며 많이 웃었다.


Q. 영화에서 각지의 사투리들이 많이 나왔었다. 원래 고향은 어디신가?

A. 저는 충청도다. 그런데 요즘 말들은 악센트에 차이가 있지 크게 단어가 다른 건 모르겠더라. 예전에는 배우들이 표준어만 쓸 수 있었는데 요새는 사투리도 많이들 쓴다. 연기자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할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자산이다. 획일화된 시대에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 아닌가.

Q. 자꾸 윤계상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유해진의 현장 통찰력에 대해 감탄을 하더라.
A. 그것마저 게을리 한다면 제가 뭐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건가? 스스로 개인에게 덜 미안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다행히 지금도 제가 연기를 하고 있는데 나이가 더 들어서 이때를 얼마나 그리워할까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화양연화'같다고 생각한다. 멀리 지나서 돌이켜 본다면 지금을 참 그리워할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

Q.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웃음이 나는 연기를 같이 떠올릴 것이다. 코믹 연기를 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코미디 연기와 연결 짓게 된다. '럭키'도 그랬고 '완벽한 타인'에서도 웃음의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셨다.
A. 그런 것만 기억하셔서 그런데 항상 코미디만 하지는 않았다. '완벽한 타인'도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어떤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 속에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도 사먹고 창 밖을 구경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모두 절제하고 도착지에서만 즐겁자고 하는 건 좀 재미없지 않나? 그래야 나중에 도착지 가서 여정을 돌아볼 때 추억할 거리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코미디인데, 선배님을 보고 썼어요"라고 한다면 난 그 작품을 안 할 것 같다. 과하게 웃음 주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영화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씩 웃게 되는 정도가 좋고, 그런 느낌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영화들을 드라마라 생각하고 연기 했다. 제가 드리는 웃음은 호두과자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겠다.

Q. 유해진에게 올 한해는 어떤 의미인가?
A. 올해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많은 분들이 '레슬러'나 '완벽한 타인'을 좋아해 줬고, 저도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내년도 세월을 몸과 마음에 잘 묻히면서 걸어가길 바란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는 2019년 1월 9일 개봉한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롯데컬쳐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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