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 근래 작품을 보면 이상하게 역사의 흐름대로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 같다. ‘사도’에서 조선시대를 거쳐 ‘밀정’에서는 일제 침략기를 거쳤고 그 이후 ‘택시운전사’와 ‘마약왕’으로 근대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A.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한때 현대극이 주류였다가, 그러고는 사극이 대세였었고, 최근에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시대물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저도 작품을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지 일부러 역사를 되짚으려고 한 건 아니다. (웃음)
Q. 이번 영화의 제목은 ‘마약왕’이다. 이전 작품에서 ‘변호인’의 경우 작품의 제목이 캐릭터를 대변하기도 했고, 긍정적인 이미지였는데 ‘마약왕’은 그 반대다. 걱정은 없으셨나?
A. 우리 영화의 타이틀이 너무 직설적이고 쏀 느낌이 들었고 거부감이 드는 소재다. 그런데 오히려 제작진들은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가는 게 작품의 본질을 강력하게 고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더라. 그 동안 선량하고 정의를 위해 살았던 소심의 이야기를 몇 년 동안 했었다. 사회 정의에 대한 각성을 깨치는 인물만 연기하다 보니 솔직히 이 시나리오가 반가웠다. 일부러 라인업을 형성한 건 아니지만 지난 10여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 20년 ~15년 전쯤 ‘살인의 추억’에서 많이 보여줬던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 면에서 관객도 반가와 하지 않을까 해서 선택했다. ‘송강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했다. 후반부는 제가 처음 표현해 보는 게 있다 보니 그런 게 또 신선했다. 관객들이 ‘재미난 송강호의 모습’과 ‘지금까지 못 본 송강호의 모습’을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을 해 주시면 좋겠다.
Q.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였다. 2시간 동안의 영상 속에서 어떤 인물의 좀 더 젊은 모습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A.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은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도 처음 해봤다. 내적인 소용돌이가 아무리 깊어도 외부로 표현해야 관객이 느끼니까 그런 지점을 많이 연구했었다. 그런데 정말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세월의 흔적 이런 거라기 보다는 건 마약에 취한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끊임없이 욕망과 집착이 뒤엉키는 걸 표현하는 건,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로 모든 상상을 다 동원해서 연기해야 했다. 배우는 정말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순간 감독도 스탭도 지켜만 볼 뿐이고 카메라가 돌아가면 배우 혼자 해 내야 하는 장면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Q. 기존의 영화들과는 좀 달랐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인 ‘내부자들’을 기대하고 봤을 때는 다소 실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결이 다르더라.
A. 그렇게 보실 수 있다. 뭔가 시원한 결말 같은 것도 없고…. 이 영화가 마약을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마약세계를 심층탐구 한다기 보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과 집착, 파멸의 인생드라마라고 생각하고 그걸 마약을 소재로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라 생각이 된다. 잘 살고 싶었던, 나를 희생해서라도 자식은 잘 살게 하고 싶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한 순수한 마음이었던 사람이 권력과 돈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파멸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차례로 경고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제어하지 못하고 자멸한다. 시대와 이야기를 결부해서 더 강력한 발언을 하려는 영화는 아닌 거 같다. 단지 역동적인 시대와 아이러니하게 최초로 마약이 부산으로 입성하는 시기가 맞물리다 보니 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데 사회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엔딩 부분은 우민호 감독이 비장의 승부수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기존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던 구도나 문법을 깨버리는 결말이어서 관객들이 좀 당황스러울 수 있다. 내부자들처럼 일종의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끝나면 좋을 텐데 ‘이게 과연 끝난 사건인가? 과연 파멸은 했지만 마약이 끝났나?’하고 의심하게 하는 회심의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이 새롭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Q.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미장센에 공을 많이 들인 영화 던데 특히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마약왕의 마지막 거처는 화려하면서도 특이했다.
A. 어떤 분들은 마약을 소재로 한 헐리웃 영화나 ‘나르코스’ 등의 걸작을 모방한 거 아니냐고도 하시던데 저는 이 세계의 공통적인 요소였다고 본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멕시코건 마약을 다루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거의 비슷한 지점이 있기에 그런 그림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그렇게 꾸민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인물들, 장소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이다. 총을 들고 대치하는 장면도 허구가 아니라 실제다. 조정석은 이 영화를 보고 ‘너무 만화 같아서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정말 이게 실화냐?’고 믿기지 않는 장면들이어서 이질감을 느끼시겠지만 모든 사건들은 실화다.
Q. 송강호가 출연하는 작품들은 엔간하면 천만 관객이 되더라. 이쯤되면 송강호가 고르는 작품이흥행이자 장르가 되는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어떠한가?
A. 어떤 시나리오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텐데 정확한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다거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면 그런 부분에서 끌리게 된다. 어쩌다 보니 관객이 많이 드는 작품을 하게 된 건데 배우로의 소박한 꿈은 그저 맡은 작품과 연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Q. ‘마약왕’이 ‘아쿠아맨’과 같은 날 개봉이다. 헐리우드 프랜차이저 작품과 붙는 소감은 어떠신가?
A. 요즘은 좋은 영화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뭔가를 피한다고 살아남는 건 아닌 거 같고 작품의 경쟁력, 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2년째 영화를 하는데 한국 영화가 많이 좋아졌다. 이건 관객분들이 너그럽게 봐 주시고 격려해줘서 가능하기도 했던 일이다. 그만큼 영화계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Q. 관객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A. 우리가 걸어온 안전하고 검증 받은 이야기, 공식이 있는 양식만으로 인사 드리는 것 보다 크게 생각해서 한국영화의 다양성, 새로운 도전들이 언젠가는 익숙해지지 않을까? 늘 똑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좀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마약왕’은 당황스럽긴 하지만 관객이 좋아할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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