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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춘천, 춘천', 우연한 여행, 그대로의 삶을 껴안은 춘천 ★★★

기사입력2018-09-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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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춘천행 기차에 탄 중년 커플 한쌍과 20대 남자. 남자는 기차에서 내려 역에 들어서는 길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동창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가는 길, 남자는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다. 우연히 만난 둘은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분명 친했던 친구인데, 남자는 동창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사실 남자는 고향 춘천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방금은 서울에 면접을 보고 오는 길. 친구 소개로 본 회사 면접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춘천에 남은 다른 친구와 술 한잔을 기울인다. 중년 커플은 춘천을 함께 여행하러 왔다. 첫날 밤, 하룻밤에 17만원이나 하는 모텔에 어색하게 함께 묵고, 다음날 청평사와 소양댐을 관광하러 간다. '춘천, 춘천'은 서로 다른 이유로 춘천을 찾은(혹은 살고 있는) 중년 커플과 남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진행한다.



▶비포 스크리닝
'초행'의 제작과 프로듀서를 맡았던 장우진 감독의 장편 '춘천, 춘천'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감독상,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부문 공식 초청,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감독은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연히 중년커플의 대화를 듣게 되었고, 이야기를 확장시켰다고 한다. 춘천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난 지현(우지현)과 춘천으로 일탈(불륜) 여행을 떠난 중년 남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이 그러하지만 '춘천, 춘천' 역시 무수한 우연들 속에서 장면, 장면들이 이루어졌다. 촬영 중 갑자기 모텔의 숙박비가 너무 비싸져 알아보니 "내일이 00일보 마라톤 대회라 방이 비싸졌다"는 말을 들은 감독은 주인공들 앞으로 마라토너들이 열렬히 뛰어 가는 모습을 촬영했고, 이는 이 영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장면으로 탄생했다. 앞이 안 보이는 취업 준비생 지현의 하루,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은 서로 어색한 불륜 커플의 여행.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서사는 '춘천'의 가을 속에서 폭 안겨 있다. 때론 쓸쓸하게, 때론 따뜻하게.


▶애프터 스크리닝
'춘천, 춘천'은 소양강, 청평사 등 춘천의 관광지가 배경이다. 그러나 이 관광지의 가을을 영화는 아름답게만 찍지 않았다. 원경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잡기보다는 멍하니 추운 강을 바라보는 인물의 얼굴, 허전한 뒷모습, 괜스레 멀리 떨어져 서 있는 사람의 거리감 등이 영화에선 더 주요하다. 고향을 떠나고 싶지만, 이번에도 기대했던 면접에서 낙방 소식을 들은 지현은 갑자기 춘천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닌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들이기도 하고, 고향 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음식점에 가서 김장을 돕기도 한다. "취업이 안 될수록 친구도 더 자주 만나고 기죽지 말아야 해." 처음 보는 어르신들의 하나마나한 덕담을 들으며 '네네' 사람 좋게 웃던 지현은 '어두운 청춘'을 그리는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자주 본 듯한 캐릭터다. 그런 지현이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자신처럼 과거에 아픔을 겪었던 친구에게 무턱대고 노래를 불러 달라 청한다. 머뭇거리다 정말로 휴대폰 너머로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의 나긋한 목소리. 프레임 안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평상에 누워 친구의 노랫말을 듣는 지현의 표정이 그간 없이 평화롭다.


만난지 얼마 안 된 듯 보이는 중년 남녀의 대화는 10분만 엿들어도 이들에게 각자의 가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천으로 여행 온 남녀에게선 '불륜'이라는 단어가 주는 질척한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색하고, 낯설고, 그렇지만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하듯 설레는 두 사람의 여정을 춘천의 포근한 햇빛이 따라 다닌다. 마주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두 사람의 장면은 조명을 잘못 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밝았다 어두웠다를 반복한다. 관광지의 흔해 빠진 음식점에 마주 앉아 "곤충 사마귀를 몸에 난 사마귀에 대면 사마귀가 없어지나요?" 등의 말을 주고 받는 남녀의 대화는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처음엔 얼마간의 거리를 주고 걷던 남녀가 점차 가까워지고, 다시 어색하게 멀어지는 관계의 거리감을 카메라는 따라다닌다. 아름다운 춘천의 풍경 속 연인의 설레는 여정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춘천을, 평범한 인물들이 걸어 다니고 평범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다만 자연스러운 빛과 인물들의 표정, 일상의 언어들이 영화에 여운을 남긴다.

'춘천, 춘천'은 9월26일 개봉하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장기상영한다.




iMBC 김송희 | 사진 제공 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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