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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어른도감' 익숙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그려내는 연출력,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 ★★★★

기사입력2018-08-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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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경언(이재인)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자신을 '삼촌'이라고 소개하는 재민(엄태구)을 만난다.재민은 어린 재인이 걱정된다며 무턱대고 짐을 싸들고 집에 들어오고, 혼자가 익숙한 경언은 그런 삼촌이 귀찮기만 하다. 입만 열면 허세스러운 삼촌이 못미더운 경언은 재민의 휴대폰 정보를 백업해두는 철두철미한 열 네살. 그러던 어느 날 재민이 아버지 보험금 8천만원을 전액 수령해 사라지고, 경언은 재민을 어렵게 찾아내지만 재민이 그 돈을 빚 탕감에 다 써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 경언의 돈을 갚기 위해 약사 점희(서정연)에게 사기칠 계획을 세운 재민은 경언에게 부녀처럼 가장할 것을 제안한다.



▶ 비포 스크리닝
천애고아가 된 소녀 앞에 처음 보는 친인척이 나타나고, 그가 소녀의 전 재산을 탕진한다. 사회면 뉴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 전혀 없을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인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 '어른도감'은 어쩌면 범죄로도 보일 수 있는 불편한 소재를 어른과 아이의 성장담으로 밝게 그려냈다. 철없는 어른과 성숙한 아이가 서로를 이해하는 성장스토리는 흔히 봐온 소재다. '어른도감'은 익숙한 소재 안에서 캐릭터를 손에 잡히도록 그려내 공감을 끌어내고 모든 인물에게 관객들이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사기꾼 삼촌마저도 이 영화 안에서는 '왠지 이해가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수요 기도회'등의 영화로 여성 서사를 그려왔던 김인선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며 '밀정'등으로 선 굵은 역할을 주로 해왔던 엄태구의 연기 변신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찍 철이 든 열네살 소녀 경언 역할의 이재인 역시 이 영화가 발굴해낸 귀한 신인배우다.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했다.



▶ 애프터 스크리닝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소녀 경언은 집에 돌아와 혼자 식탁 앞에 앉아 끅끅 울음을 삼킨다. 울던 경언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세번 쓰더니 얼른 먹는 시늉을 한다. 참을 인을 쓰고 삼키면 못 참을 일이 없다,고 살아 생전 아빠가 그랬다. '참을 일이 생길 때마디 이렇게 한다'는 경언에게 삼촌 재민은 "야, 참지 마. 자꾸 참으면 안돼"라고 말한다. 아직 열 네살이지만 잘 참는 법을 아는 '어른' 경언과 살면서 뭔가를 참아본 적이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아온 삼촌의 삶의 방식은 이렇게나 다르다. 누가 봐도 사기꾼처럼 보이는 삼촌을 경계하고 한심해 하는 경언과 그런 경언에게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라며 살갑게 다가가는 재민이 친해지는 과정을 영화는 천천히 따라간다.


사실 삼촌 재민은 관객이 미워해 마땅한 인물이다. 홀로 남은 조카의 보험금 팔천만원을 탕진하고, 그 돈을 갚을 요량으로 여성에게 사기칠 계획이나 짜는 사기꾼. 그런데도 점차 경언도, 관객도 재민을 미워만은 할 수 없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배우 엄태구의 힘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의 훌륭함이다. 더구나 소재나 캐릭터가 평범한데도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10분에 한번 정도는 웃음이 터지게 하는 연출 역시 뛰어나다. 이 영화에는 조직 폭력배도, 저승사자도, 간첩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려한 CG나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가족애, 외로움을 곁들인 성장서사를 밝고 유쾌하게 그려낸 감독의 연출력이 빛난다. 영화 내내 한번도 '아역'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경언'이라는 인물 그 자체로 보이는 이재인은 그야말로 올해의 신인발견이다. '어른도감'은 8월23일 개봉한다.

iMBC 김송희 | 사진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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