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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카운터스' 혐오에 맞서 행동하는 사람들, 왜냐면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

기사입력2018-08-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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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해충과 같다! 조선인을 자기 땅으로 내쫓자" 한국인들이 들었을 때 분노할 수 밖에 없는 팻말을 든 무리의 사람들이 스피커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자신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 써진 혐오에 가득찬 말들을 도쿄의 코리안타운 앞에서 외쳐댄다. 도로를 점령한 이들의 혐오시위는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허가를 받았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물론 폭력 시위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이 막아서고 있지만, 사실 경찰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혐오발언을 외치고 있는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치 않는 시민모임)다.


조선인을 상대로 한 헤이트스피치를 외치는 시위를 일삼는 재특회의 행진을 막아서는 또 다른 무리가 있다. "차별을 반대한다!" "우리 함께 살아요" "친하게 지내요" 등의 평화로운 플래카드를 든 무리들, 그리고 그 뒤로 재특회를 향해 날선 항의의 표현을 하는 한 덩치하는 사내들이 있다. 바로 '카운터스'의 오토코구미다. 다큐멘터리 '카운터스'는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향해 차별적 발언과 시위를 일삼는 재특회, 그에 맞서고 있는 카운터스, 그리고 카운터스에서 몸으로 재특회에 맞서는 선봉에 서는 오토코구미를 중심으로 우리 안팎의 차별과 혐오, 그리고 정의와 폭력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 비포 스크리닝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이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지식들이 몇 가지 있다. 재특회와 일본 넷우익, 카운터스와 오토코구미, 그리고 카운터스가 일본 최초로 끌어낸 혐오금지법제정 등의 용어와 사건들이다. 한국도 극우가 있듯이 일본 역시 극우 조직이 존재한다. 시민단체의 외피를 쓰고 있는 일본 극우 단체 중 하나인 재특회는 혐오의 대상을 재일조선인으로 정하고 있다. 아베 정권과도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는 이 우익 집단은 2007년에 사쿠라이라는 인물이 창설했으며, 사쿠라이는 외국인을 '자국민의 이익을 빼앗는' 집단으로 상정하는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어 유명인이 되었다.


이 사쿠라이와 반대편에 있는 것이 카운터스의 오토코구미의 대장 다카하시다. 이 영화의 주인공격에 가까운 다카하시는 사실 야쿠자 출신이다. 카운터스에 가입하기 전 자신의 사상 역시 우익에 가까웠다 말하는 다카하시는 약자들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헤이트 스피리를 보고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평생을 이른바 '상남자'로 살아온 그는 "혐오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오토코구미를 결성했다. 사실 오토코구미가 재특회에 맞서서 "사쿠라이를 잡아 족쳐버리겠다"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악에 맞서 폭력적으로 직접 정의를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다카하시는 말한다.

"차별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사실 일본과 한국의 역사, 일본 내 사회적 분위기나 재특회에 대해 잘 몰라도 영화 '카운터스'를 따라가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CG와 자막, 뉴스 영상 삽입 등으로 영화 시작과 동시에 10분 안에 모든 상황을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카운터스가 재특회에 맞서 정의롭게 싸워 혐오금지법을 끌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 까다롭고 복잡한 이야기를 유쾌하고 신나게 풀어낸다. 다양한 전법을 구사하며 재특회와 싸우는 카운터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만화 주인공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만화에 나오는 다소 바보스럽지만 정의로운 용사에 비견하게 오토코구미를 그린 방식이 다큐멘터리에 활기를 더한다. 일본에서 장기간 유학하며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이일하 감독의 영화다. 이일하 감독은 도쿄 조선학교 권투부 성장기 <울보 권투부>(2015)를 만들기도 했다.




▶ 애프터 스크리닝
'혐오'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도 익숙한 단어다. 성별과 인종, 난민 등을 둘러싸고 많은 오해와 싸움들이 각각의 집단을 '혐오'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이 혐오의 기저에는 '차별'이 깔려있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특회의 사쿠라이는 "인간에게 차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차별이 있기에 인류가 발전해 온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에게 "차별을 당해본 적이 있냐"는 카메라의 질문에 사쿠라이는 자신도 아버지 없이 자라며 차별적 발언을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자기 말로는 "평범하게 자란 학생회 출신"이라는 그가 지금은 시위대의 앞에 서서 "재일조선인은 꺼지"라고 외친다. 사쿠라이에게 맞서는 다카하시의 이력은 그보다 재미있다. 어느 감독이라도 다카하시의 다면적인 매력과 삶의 이력을 보면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고 싶어질만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다카하시는 어릴 때부터 반항적인 소년이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한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다. 가정법원에 갔었다는 그에게 "그게 몇 번째였냐"고 묻자 다카하시는 멋쩍게 "셀 수도 없다"고 답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자연스레 야쿠자로 살았고, 그 흔적으로 지금도 그의 팔에는 화려한 용문신이 자리하고 있다. 사상 역시 우익에 가까웠던 다카하시가 약자를 위해 싸우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강한 인간들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단순한 신념으로 다카하시는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다.
재특회는 도쿄의 코리안타운 앞에서 시위를 한다. 재일조선인 학생들은 그들의 발언에 울면서 상처를 받는다.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 아이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다가서면 괜찮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재일조선인이 친절하든 거칠든 그들의 본질따위는 재특회에게는 중요치 않다. 재일조선인 소년, 소녀를 선생님들은 이렇게 위로한다. "재특회도 있지만, 그에 맞서 싸워주는 카운터스가 우리에게 있다"고.

다카하시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약한 사람을 구해주는 의리있는 건달같은 사람이죠.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람입니다."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싸운 진보 세력은 흔치 않다. 그래서 카운터스 오토코구미의 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다. 오토코구미는 WAR AGAINST WAR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전쟁에는 전쟁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영화 내내 의외로 폭력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현장에서 항의할 뿐이고, 경찰이 재특회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운터스는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인터넷에 댓글 몇줄 달고 끝내는 게 아니라 넷우익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그 앞에서 정말로 소리 높여 "차별하는 놈들은 꺼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응당한가. 사쿠라이와 다카하시를 의도적으로 병치시킨 편집으로 감독은 두 인물의 말들을 통해 누가 진짜 옳은 지 말하고 있다. 악당에 맞서 다양한 전법으로 싸워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과 결국 승리(혐오표현금지법 발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점차 흥이 난다. 팩트를 건조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뉴스, 랩과 같은 음악과 CG등을 삽입해 유쾌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재특회의 사쿠라이가 강연에서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는 자국민이 살기 힘든 나라다". 사실 그 말은 일본에 사는 한국인을 차별하자는 주장을 위해 나열하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이 말을 우리에게 돌려줄 때가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흑과 백, 저편과 이편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그 복잡한 현실 속에서 나의 위치와 신념은 무엇이냐고 '카운터스'는 묻는다. 단순히 실화의 감동을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의, 차별, 우리 안의 혐오에 대해 자문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다. '카운터스'는 8월 15일 개봉한다.

iMBC 김송희 | 사진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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