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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오 루시!' 괴상한데 매혹적인 설렘, 루시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

기사입력2018-06-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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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40대의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는 혼자 사는 외로운 중년 여성이다. 자신보다 몇 살 위인 나이 든 여직원이 퇴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더욱 착찹해진다. 뒤에서 동료들이 '눈치 없다' 험담하는 존재감 제로의 그녀가 마치 세츠코의 미래인 것만 같다.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고 너저분한 원룸에 혼자 사는 그녀에게 가끔 연락하는 조카(쿠츠나 시오리)가 갑자기 연락해와 이상한 제안을 한다. '이모, 영어 학원 다니지 않을래?' 자신이 끊어놓은 1년 짜리 영어학원 회원권을 이모에게 팔아치운 조카때문에 팔자에 없던 영어 학원에 간 첫날, 세츠코는 특이한 미국인 강사 존(조쉬 하트넷)과 톰(아쿠쇼 쇼지)을 만난다. 인사로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존은 세츠코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를 꽉 끌어안고, 루시가 된 세츠코는 존의 포옹에서 한번도 못 느껴본 설렘을 느낀다.



▶ 비포 스크리닝
따분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던 중년이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욕망, 매혹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익숙한 내용이다. '오 루시!'에 독특한 질감을 불어넣은 것은 역시나 배우들이다. 테라지마 시노부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40대 여성을 연기하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존에게 욕망을 분출하는 '루시'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미련 하나 없어 보이는 지루한 표정의 '세츠코'를 오가며 관객이 주인공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정말 조쉬 하트넷???' 첫 등장부터 놀라게 하는 '존' 역할에는 조쉬 하트넷이 분했다. 나쁜 남자인지 그냥 우유부단한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 남자 존은 극중 애매하게 그려져 있는데 자기 결정권이 크지 않은, 세츠코의 충실한 욕망의 대상으로만 복무하기 때문이다. 조쉬 하트넷은 딱 그만큼의 역할을 욕심 부리지 않고 훌륭히 해낸다. 히라나야기 아츠코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었으며, 제70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었다.

▶ 애프터 스크리닝
'오 루시!'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세츠코가 존을 처음 만나는 일본과 존이 LA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뛰쫓아 가는 LA에서의 여정이다. 무채색의 일본에서 세츠코는 내내 표정도 의욕도 욕망도 없어 보이다가 존을 만나서 비로소 자신의 욕구에 눈을 뜬다. 존과 함께 떠난 것으로 예상되는 조카의 엽서를 받고 존의 집을 찾아 나서는 일대의 결정을 한 세츠코의 표정에는 생기가 돈다.



존을 찾아 LA로 가고 그를 만나고, '나는 루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존을 저돌적으로 쫓아다니는 세츠코는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사실 세츠코의 직장과 세츠코가 출근하는 일본 거리, 영어 학원 등은 진짜 일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서양이 상상하는 일본의 모습'이 적극 반영되어 있다. 일본 감독이 연출했음에도, 영어 학원을 일부러 '일본 가라오케' 배경으로 설정한 것이다. 루시가 노란 가발을 뒤집어 쓰고 낯선 미국 남자에게 안겨 자기 안의 욕망에 눈을 반짝 뜨는 곳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연출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 학원 부스에 트렌스젠더가 있고, 루시의 조카가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등의 설정 역시 외국인이 상상하는 '일본적인 것'의 나열처럼 보인다.

괴상해보일 수도 있는 여자 세츠코를 연기하는 테라지마 시노부의 얼굴만이 이 괴상한 배경 속에서 극을 긴장감으로 가득 메운다. 존을 만나기 이전과 LA에서 돌아온 후의 삶 역시 쓸쓸하고, 세츠코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서글프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며 지루한 직장에 OL로 근무하며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중년 여성의 삶을 마냥 외롭고 슬프게만 그린 것 역시 새롭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오 루시!'는 6월28일 개봉한다.

iMBC 김송희 |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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