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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이창동이 ‘버닝’으로 요즘 세상에 던진 돌직구 질문.. 과연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기사입력2018-05-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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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으로 ‘시’ 이후 8년만에 작품을 낸 이창동 감독을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영화 ‘시’로 이창동 감독이 제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후 약 8년 만에 다시금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국내에서 영화가 소개되기 전이라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에에서 날아든 소식들은 프랑스 현지 영화 전문지 역대 최고 평점 경신, 호평 일색 등의 내용이었으나 아쉽게도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이 수여하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최고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 수상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영화보다 영화 외적인 이슈들이 화제가 된 상황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자들과 만나 영화 ‘버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다소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시긴 했는데 그 이야기야 말로 ‘버닝’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고 묵직하게 돌직구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니 잠시 숨 돌리며 답을 찾아보자.


Q. 반갑습니다.

A. 영화 만들고 이렇게 많은 기자를 만나는 건 처음이다. 항상 영화 전문지 기자만 만났고, 다른 매체는 만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

Q. 대중들과 좀 더 소통하시겠다는 의미이신가?
A. 저는 관객과의 소통은 영화로만 한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 하는 게 영화 감독에게 의미가 있나?중국집 주방장이 요리를 잘 해야지 홀에 나와서 손님들과 소통한다고 맛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 예전에 내 얼굴이 뉴스화면에 나온 시절도 있어서 기자들 만나는 게 불편하다. 사람들과 섞이고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얼굴이 알려지는 게 힘들다. 노출빈도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고 작가시절 때 부터 저는 ‘작품 이외의 이야기는 일종의 오류다’라고 배웠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 ‘버닝’은 특히 설명하거나 의미, 관념을 전달하면 안 되는 영화인데 이렇게 직접 설명하거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어색하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Q. 칸 영화제에서 본상 수상이 불발되었다. 아쉽지 않으셨나?
A. 당연히 아쉽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 사실은 아쉬운 정도가 아니다. 이상하게 ‘버닝’이라는 영화가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에 수상 여부에 올인하는 것처럼 마케팅이 되어버렸다. 수상을 했으면 힘을 받았을 텐데, 기대가 너무 높아서 실망감도 커졌다. 감독으로서 같이 작업한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만약 수상을 했다면 좋은 계기가 되어서 한국영화 전체에 자극이 되고 활력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Q. 프랑스 현지에서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고?
A. 현지에서는 약간 예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보통 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들어가는 영화들은 꼭 예술영화라기보다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다. 개성이 강하다는 말은 호불호가 갈린다는 의미이고 ‘버닝’도 호불호가 갈릴거라 예상했는데 다들 좋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러다 국내 반응을 보면 예상외로 온도차이가 많더라. 나한테는 이런 반응들이 숙제다.

Q. 국내와 해외의 영화 반응차이는 왜 그렇다고 느끼시나?
A. 제가 영화를 하면서 느낀 건 관객이 영화를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매체는 해석을 한다. 심지어 뮤지컬을 보러 가도 해설서를 보고 이해하려 하고 미술을 봐도 도록을 보고 해석하려고 하는데 영화는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느끼고 체험한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버닝’이 딱 그 과정을 통해서 받아 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하다. 칸에서 본 외국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반응이 아니라 다들 자기확신을 갖고 남의 이야기를 안 듣는다. 내가 이야기를 해도 ‘그건 너의 의도고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어’라고 한다.

Q. 영화가 상영되기 전 배우들로 인해 논란이 있었다.
A. 영화 외적인 논란은 안타깝지만 제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각자의 몫이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건 받아들이고 통과해야 할 문제지, 제가 감독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처럼 말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는 다 경험하면서 성숙해가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Q. 그 동안 감독님의 작품들은 대체로 메시지가 분명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버닝’은 그렇지 않아서 낯설더라.
A. 늘 지금까지 질문을 하기 위해 영화를 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으로 오해를 갖고 있는데 한번도 영화에 메세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메세지나 답을 찾는 건 관객의 몫이지 제가 던져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메시지는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장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착한 것이 악한 것을 이기고 정의는 항상 옳다는 식의 당연한 메시지가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질문을 하고, 관객이 답을 찾거나 스스로 질문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드는 거다.


Q. ‘버닝’은 예전 작품에 비해서 뭔가 스타일 적으로도 많이 변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A. 확실히 변한다. 나는 늘 변화하고 싶었다. 내 전작들을 ‘버닝’과 비교하면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끼겠지만 난 늘 변화하려고 했다. 이번 변화는 좀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질문이 더 복잡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다 비우고 영화를 있는 그대로만 느끼면 그래도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영화더라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혀질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또 다른 질문과 연결되어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바꿔야 하고 누군가는 낯선 걸 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다음에는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그 다음에는 관객에게 새로운 걸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Q. ‘버닝’에서는 친절하게 설명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남산타워의 빛이라던가… 이전 작품에서는 설명적인 부분이 없었다고 느껴졌는데.
A. 정작 제가 영화 속에서 코드로 심어놨다고 하는 중요한 것들은 설명 없이 느낌으로 받아들이길 바랬다. 남산타워의 빛은, 그건 설명이라기 보다 현상이다. 실제 남산타워의 빛은 사람들이 다 못 읽고 있다. 그 빛은 다른 코드다. 그게 사실은 빛이 아닌 거다. 햇빛처럼 보이지만 반사된 거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의 모든 코드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일부 관객들은 표면에 있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 같다.

Q. 최승호 MBC사장의 출연은 어떻게 된 것인가?
A. 최승호 사장, 우리는 최승호 PD라 불렀다 사장 되기 전에 찍었으니까. 종수 아버지를 배우 중에 찾기 보다 그냥 현실에서 찾고 싶었다. 본인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종수아버지 같아서 캐스팅 했다.


Q. 영화에서 쳥년들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작 종수가 처한 환경이 보편적인 청년을 대변한다고 보기엔 무리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설정하셨나?

A. 관객이 원하고 공감할만한 인물과 상황으로 만드는 것은 상업영화의 기본이라 말할 수 있다. 저는 거기에 매이고 싶지는 않다. 종수는 현재 현실을 살고 있는 20대 후반의 작가지망생 청년이지만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 놓은 현실의 덫에 묶여 있는 친구다. 종수 같이 젊은 친구가 왜 파주에 가서 그런 공간에 살고 있냐?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싫어했고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이고 심지어 그곳을 떠났지만 송아지 밥줄 사람이 없어서라는 단순하고 인간적인 이유로 가 있는 것이다. 원치 않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 공간에 놓여 있는 거고 떠나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묶여있는 것이고 묶여있는 이유는 너무나 하찮게도 송아지 밥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 그런 모습이 지금 젊은이를 보편적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적 대안으로 올릴 수 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냐고 한다면... 답하기 애매하다. 왜냐면 그건 내 마음이니까. (웃음)

Q. 영화가 후반부의 추적 미스터리로 가면서 길어지고 복잡해졌다. 종수가 증거를 찾아냈다고 하기엔 뭔가 미흡하고 찜찜했다. 관객이 혼란스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A. 이 영화가 ‘해미는 어디 갔을까? 벤은 어떤 인물일까?’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범인이 누굴까를 찾는 영화는 아니다. 장르로 보면 미스터리 장르이긴 하지만 다른 성격의 미스터리라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서사가 뭐냐고 묻는다면 서사는 자기 욕망의 산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이 다양하게 자기만의 서사를 찾길 바란다.
일차적으로 벤이 해미를 죽였을 거라는 의심은 있지만 확증은 없다. 증거를 찾기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벤이 해미를 죽였을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종수의 의심이다. 그러면 ‘뭐냐?’라는 의문이 들텐데… 그게 저는 세상의 미스터리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작은 것들이 때로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뭔가 끔찍한 것과 연결 되기도 한다. 해결되지 않는, 확증을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 그 막막함이 더 큰 문제다. 그게 더 근원적인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게 아닐까. 우리 때는 답이 분명했다. 아니 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계급의 문제건 민주화건 당시에는 잘못 된 게 보였고 그걸 고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명히 잘못된 건데 문제가 뭔지 알 수가 없다. 탄핵국면 때도 눈앞의 문제를 보았기에 어느 정도 해소를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청년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긴 싸움이 필요한데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싸움을 해야 할지는 모른다. 세상이 미스터리 같다. 저에게도 그렇고 젊은 청년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거 같다. 더 막막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한 현실이지만 세상은 세련되고 여유 있고 편리해지고 심지어 아름답고 예뻐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친절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고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어쩌면 벤의 모습이 아닐까.

Q.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청년세대가 아니신데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시는 게 놀랍다. 학생들을 많이 대하신 것이 계기가 되셨나?
A.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학교에서 학생을 대해서라기 보다 저도 자식이 있다. 기성세대의 꼰대 같은 소리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 때는 현실적으로는 힘들었지만 희망이 있었다. 독재 정권을 어떻게 하면 될 거라는 추상적인 희망도 있었지만 물질적으로도 내가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점점 잘살게 될 거라는 분명한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자식을 봐도 그렇다 아버지는 멀쩡하게 살지만 자식은 아버지만큼 여유 있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내 눈에 보이더라. 이건 능력과 상관없고 본인의 노력과도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개인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개인의 삶은 초라해지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봐도 그렇다. 조금씩 우울증에 걸려있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을 우리가 알기 쉬운 서사로 쉽게 감동할만한 이야기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위로나 힘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 아니냐. 그래서 오히려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창동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질문은 영화 '버닝' 속에서 다양한 색체로 이글거리며 관객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 당혹스러운 불편하고 어두운 감정은 뭐지?라며 정리를 못하신 분들에게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버닝'은 17일 개봉하여 청소년관람불가로 상영중이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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