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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人스타] 이순재 “62년간의 연기는 자부심으로 하는 일”

한국영화홈페이지 2018-04-06 09:00
[人스타] 이순재 “62년간의 연기는 자부심으로 하는 일”
인터뷰를 하기 전에 유독 설레는 배우들이 있다. 잘 생기고 예쁜 배우라서? Nono~ 연기경력 62년, 84세라는 나이, 출연했던 방송 90여건, 출연했던 영화 121건, 공연 59건 등 그 어떤 숫자로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내공을 갖고 있는 실존 인물 이순재여서다. 기자가 살아오며 봤던 무수한 드라마, 예능, 시트콤에 항상 이순재는 출연했었으며 어릴 때도 보았고 나이 든 지금도 볼 수 있는 그의 연기는 장르에 적합하게 웃겼다가 울렸다가 감동도 주었다가 때로는 배경처럼 때로는 주인공으로 항상 함께 해 왔었다. 어린 추억을 함께했던 인물들은 지금쯤 은퇴 했거나 혹은 역사 속 한 페이지로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말 다행히 감사하게도 배우 이순재는 아직 정정하게 TV, 영화, 연극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3일 영화 ‘덕구’의 주인공으로 열연한 이순재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카페를 꽉 채우는 또렷하고 큰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이었다.


Q. 영화 ‘덕구’를 너무 잘 봤다. 영화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간만에 참 좋은 영화였는데 개런티도 안 받고 출연하셨고 홍보도 혼자 동분서주하시며 하고 계신다.

A. ‘덕구’는 저예산 영화다. 어린 아이 둘 하고 나하고 출연하는데 달라고 해봐야 돈도 없어 보였고, 차라리 안 받는 게 좋을 것 같더라. 홍보 할 사람도 나밖에 없더라. 아이들이 하겠나? 남녀 주인공이 있었으면 같이 할 텐데 혼자 해야 하다 보니 부담감이 있다. 어짜피 내가 주도했던 영화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홍보하는 중이다.

Q. 요즘 영화 홍보 활동하시느라 어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오시더라. ‘동상이몽’에서 아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하신다는 걸 봤다. 진정한 사랑꾼이시더라.
A. 젊을 때는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할 조건이 못되었다. 대학때 취미가 영화 보는 것이었고, 그래서 배우를 꿈꿨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을 봤었다. 소름이 돋더라. 세익스피어의 영화나 연극은 대사를 어떻게 구사하는 가가 관건인데 정말 대단했었다. 영화를 보고 배우를 조사했더니 작위도 받은 세익스피어 전문가더라. 요즘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로 제한적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문호가 넓었다.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고 당시의 세계적인 명감독,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연기자를 꿈꾸게 되었다. 당시에 한국 영화는 완성도가 너무 낮았었고, 그래서 영화계가 아닌 연극을 먼저 시작했었다. 그런데 연극은 오히려 돈을 들여 무대를 올려야 하다 보니 돈을 벌 수가 없었다. TV에 출연하니까 출연료라는 게 나왔고,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를 통해 56년도에 연기자로 데뷔하게 되었다. 출연료라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어서 TV 출연도 하면서 영화도 찍으면서 정말 바쁘게 일했었다. 연기 경력 62년인데 내가 출연한 영화가 100편이 넘더라. 한 해에 영화를 몇 편씩 출연했던 거다. 어떤 날은 하루에 4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었다.


Q.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셨으면 돈도 많이 버셨을 것 같다.

A. 그렇지 않다. 처음 TV 출연을 했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천지개벽의 수준이다. 90년대중반까지는 일년에 한번씩 방송국과 단체협약을 해서 지급받았는데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정체가 심해지니까 90년대 후반에서야 자율적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고, 외주 제작 환경이 생겨나면서 몇몇 배우들의 출연료가 갑자기 돌연변이처럼 올라가게 된 거다. 작년에서야 겨우 나도 어느 정도 받기 시작했다. 방송국 사정을 잘 아니까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 망신스럽게만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는데 결국은 자존심이 상하는 수준으로 지금까지는 받았었다. 수입이 없으니 연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TV하랴 영화 하랴... 신혼 초에는 한 달에 길면 일주일, 짧으면 5일 정도 밖에 집에서 못 잤다. 그래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20년을 지내고서야 겨우 25평짜리 아파트를 하나 살 수 있었다.

Q.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톱스타들의 출연료들이 가끔 뉴스가 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톱스타를 써도 성공하는 드라마가 많지 않더라.
A. 예전에는 시청률이 60%대였는데 요즘은 15%만 대도 성공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시청시간, 시청방법이 많이 변했다. 상황이 변하다 보니 이제는 방송가에서도 비싼 배우보다 연기 잘하는 생소한 얼굴의 배우들을 쓰려는 것 같더라. 변경되었다. 좋은 효과라고 본다. 동숭로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대거 드라마에 진입하면서 연극계와 방송계 모두에 상당히 좋은 효과가 있다고 본다.

Q. 62년간의 연기 활동은 사실 감도 안 오고 상상도 잘 안 된다. 62년동안 연기를 한다는 건 어떤 건가? 그 정도 경력이 되면 정말로 눈 감고도 연기가 되는 건가?
A. 우리나라는 아직 연기자를 예술가로 인정 안 하려고 하는데, 자부심으로 하는 일이다. 예술창조에는 끝이 없고 완성이라는 게 없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잘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신구와 내가 같은 배역으로 연기를 해도 해석이 다르기에 연기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걸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배우의 연기성은 세가지로 구분이 된다. 작품보다 못한 연기, 작품만한 연기, 작품보다 나은 연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연기 그 이상은 연구하지 않으면 안 나온다. 아이디어가 나와야 할 수 있는 연기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면 발전할 수가 없다.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 자책하고 개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기는 톱스타인데 연기도 톱이라고 생각하는 배우들이 있다. 자질은 훌륭한데 아집이나 망상에 빠져 있는 친구들도 가끔 보인다. 성공한 배우 출신의 비즈니스맨이 아닌 배우가 되려면 오로지 연기로만 변화하며 이 길을 가야지 돈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Q.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업을 고민하는 배우들도 많을 것 같다. 선생님은 그런 고민을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A. 나는 애초에 비지니스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60년대에 3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집사람이 만두가게를 시작했다. 10평짜리 물만두 가게였는데 잘 되더라. 그런데 일손이 부족하니까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었는데 “나는 죽어도 연기를 할 사람이야. 혼자 안될 것 같으면 문 닫아라”고 했다. 또 나중에 이촌동에 중국집도 했었는데 자꾸 가게에 날 부르더라. 그래서 또 “날 팔아 장사하면 안 된다. 맛으로 승부를 봐라”고 했더니 애들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접더라. 부업이 성공하려면 연기를 떠나야 한다. 둘 다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Q. 우리나라 방송연기의 산 역사나 다름없으시다.
A. 오래 했으니까 그렇지. 내가 이래 뵈도 3개의 일일드라마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최초의 일일연속극 ‘눈은 나리는데’, 최장수 일일드라마 ‘보통 사람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했었다. (웃음)


Q. 지금 드라마 ‘라이브’에도 출연하시면서 연극도 하고 계신다. 일정이 굉장히 바쁘시더라.

A. 우리가 그 동안 ‘사랑별곡’도 했고 ‘사랑해요, 당신’도 했고 지금은 ‘앙리할아버지와 나’를 전국을 돌며 하고 있는데 다 괜찮았다. 연극하자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늙은이들이 모여서 하는 연극도 손님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늙은이라고 송장인 건 아니다. 노련한 노배우들의 경륜을 봐줘야 한다. 시니어들을 그저 구색 갖추기 용으로만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늙은이들이 이야기 거리가 더 많다. 늙은이와 중년, 청년이 함께 3대가 나오는 시트콤이 있으면 좋겠다. 신구, 나, 최불암, 주연 정도가 노인네로 나오는 시트콤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연극계에서도 오래 활동하셨으니까 조심스럽게 ‘미투운동’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다.
A. 이제는 정신차리겠지. 옛날에는 관행이었다. 한 극단이 지방으로 3~6개월씩 돌아다니다 보면 별일이 다 있었다. 연극계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울지 않고 배우가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격한 조직이긴 하다. 하지만 상하 종속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이고 선배의 역할이 있는 것일 뿐 후배가 선배의 노예나 시종이 아니다. 그런데 선배로 군림하다보면 관행이 되고 습관이 된 것일터. 앞으로는 이러지 못하게 사회적 이슈가 생겼다. 다들 경각심을 가지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미국에서 건너온 ‘미투’지만 사회정화에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Q. 혹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배우의 길을 선택하실 건가?
A. 요즘 같으면 얼른 할거다. 빌딩 하나는 지을 수 있을 거 아니냐. 나는 지금까지 평생 했는데 2층자리 건물 하나 없다. (웃음) 예전 같으면 안될 친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더라. 자질이나 조건을 이미 가졌다면 우리 나라가 아니라 세계로 뻗어가서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고 본다. 스타들이 여력을 가지고 심도 있게 공부하면 좋겠다. 쉴 때 몰디브 가서 수영복입고 쉴게 아니라 나 같으면 미국 액터스쿨 가서 트레이닝을 받고 오겠다. 돈 말고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되면 평생을 연기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새로운 도전, 새로운 창조,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하는 게 연기다.

Q. 요즘 선생님 인생의 낙은 무엇인가?
A. 이거(연기) 하는 게 낙이다.

덧붙이는 사족 : 사실 지면에 적지 못한 엄청나게 많은 말씀들을 하셨다. 영화산업의 역사와 우리나라 연극계의 발전사,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변천사, 그 외의 많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지만 이순재 배우의 살아온 시간들을 다 담기엔 받아들이는 우리의 역사와 이해가 너무나 짧아서 죄송했다. 한 시간 동안 말씀하시면서 단 한번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던 정정함과 기자가 미처 받아적지도 못했던 배우, 감독들의 이름, 영화의 제목, 작품명들을 줄줄줄 꿰시는 총명함에 또 한번 놀랬다. 나영석 PD는 왜 이순재 선생님과 ‘꽃보다 할배’를 만들었을까? ‘알쓸신잡’에 출연하셔도 유시민과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실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건강하게 더 오랫동안 작품활동 하시길! 조만간 연극도 보러 가봐야겠다. 영화 '덕구'는 4월 5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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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 김경희 | 사진 이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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