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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아이, 토냐' 우리가 미워하고 사랑한 악녀에 대하여 ★★★★

기사입력2018-03-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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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1994'그 사건'이 미국을 뒤집는다.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괴한이 아이스 스케이트 연습장에 난입해 피겨선수 낸시 캐리건의 무릎을 내려치는 테러를 가한다. 미국 국가대표선수였던 낸시 캐리건 테러 사건에 미국 FBI까지 나서서 수사를 펼치고 그 배후로 라이벌 선수였던 토냐 하딩과 그녀의 전남편과 보디가드가 지목된다. 사건과 무관하다 주장했던 토냐 하딩은 올림픽 이후 유죄 판결을 받았고, 피겨 선수로서 다시는 은반 위에 설 수 없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한데, 토냐 하딩은 이후 복서로 데뷔해 링 위에 서기까지 했다. 할리우드가 이 인물로 이제야 영화를 만든 것은 늦은 감이 들 정도다. 토냐 하딩의 사건과 낸시 캐리건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미국에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스티븐 로저스가 각본을 쓰고 크레이그 질레스피가 감독한 아이,토냐는 미국 대중들에게 오랜 시간 악녀로 지칭됐던 토냐 하딩이 주인공이다. 90년대 미국 타블로이드에 끊임없이 악녀의 역할로 소환되며 가십으로 소비되었던 토냐 하딩의 시선에서 그 사건과 그 이전까지 자기 삶에 대해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 토냐 하딩의 가혹한 엄마 역할로 출연한 앨리슨 제니가 2018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2018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비포 스크리닝

, 실화가 얼마나 극적인지에 대해 한국 관객에게는 이렇게 소개하면 될 것 같다. “토냐 하딩의 이야기는 써프라이즈에도 나왔어요!”. 맞다, 일요일 아침마다 전 세계에 진짜 같지 않은 진짜 괴상한 실화(라고 추정되는 사건)들을 보여주는 재연극장 MBC '신기한 TV 써프라이즈말이다. 토냐 하딩은 다큐멘터리와 자서전 등에서 자신은 전 남편이 낸시 캐리건을 해치는 일을 꾸미는 지 몰랐다고 주장했고, 이 영화에서는 토냐 하딩의 시선에서 그 사건을 재연한다. 사실 영화에서 해당 테러 사건보다 주목되는 것은 어린 토냐가 엄마에게 당한 폭력, 그리고 토냐 하딩이 어머니를 벗어나 다음 대상(전 남편 제프 길롤리)에게 거처를 옮기고도 계속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던 과정이다. 토냐 하딩은 사실 기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스케이팅 선수였다. 미국 여자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고, 심사위원으로부터 내내 차별적인 점수를 받아왔기에 실력(그 중에서도 트리플 악셀)으로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실제로는 스케이트 선수가 아닌 배우 마고 로비가 얼마만큼 스케이팅 장면을 구현했는지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일 것이다. 마고 로비는 4개월간 특훈으로 어려운 기술을 제외하고 특수효과 없이 직접 촬영했다. 특히 토냐 하딩의 첫 트리플 악셀 성공 대회 장면은 매우 박진감 있게 연출되었다. 관객이 스케이트장에 들어가 함께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스케이팅 안무가인 사라 카와하라와 특수효과 제작팀이 만나 사각사각이는 스케이트 소리와 고난이도 스케이트 장면을 액션 장면처럼 표현했다. 실존했던 사건과 선수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악녀로 불렸던 여성'을 지금 어떻게 재조명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그려낸 영리한 영화다.


▶ 애프터 스크리닝
토냐 하딩은 아무리 스케이트를 잘 타도 심사위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녀가 심판과 코치에게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이 '얌전한 옷을 입고 우아한 곡을 선곡해라'였다. 여유가 없었던 토냐는 값비싼 피겨 의상을 맞출 능력이 없었고, 자신의 스케이팅에는 우아한 클래식보다는 록킹한 음악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90년대에 미국이 원했던 '피겨 공주'를 연기하기에는 그녀는 너무 강한 캐릭터였다. 극 중에서 토냐 하딩은 심판과 코치에게 듣는 잔소리(블랙 네일을 지워라, 옷을 얌전하게 입어라) 앞에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굽이지 않는다. 실력으로 이 모든 차별을 이겨내려는 모습은 토냐를 악녀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없게 만든다.



행복했다 말하기 어려운 실존 여성이 주인공임에도 아이, 토냐에는 시종일관 유머가 넘실댄다. 모큐멘터리 형식을 도입해 사건의 주인공들의 인터뷰 씬을 넣었는데, 토냐를 학대했던 엄마 라보나 역의 앨리슨 제니와 경호원이라고 소개되지만 그냥 얼간이에 불과했던 션 역할의 폴 월터 하우저의 인터뷰 장면이 특히 블랙유머의 정점이다. FBI까지 뛰어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바보스러웠던 범죄 방식이 전개될 때에는 그야말로 코미디다. 빈곤한 가정에서 피겨를 하면서 학대받았던 토냐 하딩의 유년시절, 부부싸움이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번졌던 남편과의 관계, 사랑받고 싶었지만 엄마도 남편도, 대중마저도 사랑해주지 않았던 토냐 하딩의 멍든 얼굴을 연기하는 마고 로비는 토냐 하딩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만의 자리에 두지 않는다. 토냐 하딩은 오해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피해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림으로써 극에 유머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박진감 넘치는 피겨 스케이팅 대회 장면, 폭력의 한복판에서 멍든 얼굴로 인생과 정면으로 싸우는 여성 캐릭터, 90년대 미국 빈티지 패션과 분위기까지 볼거리까지 충만한 영화다. 3월 8일 개봉했으며, 극장에 걸려있을 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다.


iMBC 김송희 | 사진 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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