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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애프터스크리닝] '소공녀'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기 전까진 나는 불쌍한 게 아니야 ★★★☆

한국영화홈페이지 2018-03-12 22:20
[애프터스크리닝] '소공녀'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기 전까진 나는 불쌍한 게 아니야 ★★★☆

▶ 줄거리
가사 도우미로 하루 4만5천원을 벌고 만원은 월세 대비로, 나머지는 담배와 위스키를 사고 남자친구인 한솔(안재홍)과는 거의 집에서만 연애하며 '극빈'하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미소(이솜). 그러던 어느 날, 집 주인은 월세를 올려달라 하고, 담배값도 갑자기 2천원이나 상승하는 고난이 닥쳐온다. 담배값이 올랐을 때, 하루 일당 중 어디에서라도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미소는 '집'을 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집을 빼고 과거 함께 밴드를 했던 '크루'(친구)의 집을 찾아가 잠을 자기로 하는 미소. 친구들은 그녀를 "스탠다드하진 않지. 유니크하다"라고 하지만, 이런 생활도 '여행하는 거'라고 자족하며 일하고, 담배 피고, 연애하며 사는 미소는 부족한 게 없어보인다.


▶ 비포 스크리닝
전고운 감독은 "이 배우들과 함께 하기 어려운 제작비였는데, 참여해주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개봉 소감을 말했다. 어쩌면 '소공녀'는 이솜과 안재홍이 출연하지 않았으면 여타 한국 독립영화들처럼 소규모로 관객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청춘 스케치'(1994)의 트로이(에단 호크)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담배와 커피 한잔, 너와 나, 그리고 5불이면 돼"라고 한 것처럼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한다. 한때 밤새 술을 마시고 밴드를 하며 청춘의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도 지금은 모두 직장인이 되거나 결혼을 해서 안정을 취했다. "여전하구나, 너"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미소뿐이다. 담배사고 1만3천원짜리 위스키를 사마실 돈은 쓰지만, 집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미소를 주변에서는 특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게 벌어서 집이 아닌 취향을 선택하는 미소는 특이한 게 아니라 그냥 그 나름의 법칙에 의해 살 뿐이다. 여기에는 불쌍한 청춘도, 시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청년세대에 대한 동정도 없다. 누구보다 건강한 사고방식으로 자립적으로 하루 하루를 해쳐나가는 미소와 함께 '내 친구의 집'을 따라 다니다 보면 미소도, 미소의 친구들도, 미소의 남자친구도 모두 더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모두에게 연민 혹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내 월급 빼고 모든 게 잘도 오르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둡지 않게 재기있게 그려낸 전고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족구왕'의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했고,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CGV 아트하우스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 애프터 스크리닝
'소공녀'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본 사람들은 모두 이솜을 향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후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이솜이 연기했던 당당하고 멋진 우수지의 전신이 바로 '소공녀'의 미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소는 "저기, 나 하룻밤만 재워줄 수 있을까?""나 쌀 좀 줄 수 있니?"등의 말을 할 때조차 부끄러워보이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는 여자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혹은 삼십대 초반, 직업은 가사 도우미, 집이 없어서 캐리어를 들고 떠돌아다니는 상태, 약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머리칼이 하얗게 물드는 병에 걸림. 이 프로필을 읊었을 때 누군가는 '불쌍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서 그녀를 불쌍하거나 이상하게 보아도, 미소 스스로 자신을 가여워하지 않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다부지다. 미소의 사연을 들은 상대가 "힘들었겠어요" 동정하면 "아니여,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응수하고 씽긋 웃어 넘기는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누군가의 응원이나 연민조차 필요 없이 이미 혼자서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즐겁게 놀았던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또 그집에서 하룻밤 기거하며 친구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사라지는 미소를 보고 있으면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태희(배두나)가 생각난다. 자기연민 없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한 없이 다정하고 꿋꿋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솜이 영화 내내 반짝반짝 빛난다. 홈리스 여성은 자주 위협적인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하고 벌떡 일어나는 미소에게 박수를. 앞으로 한국 영화에 더욱 많은 미소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소공녀'는 3월 22일 개봉한다.


iMBC 김송희 | 사진 광화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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