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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김윤석 "올해 한 가장 뿌듯한 일은 <1987> 찍은 것"

기사입력2017-1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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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했던 현대사. 1987년의 박종철 열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소름돋는 악역을 연기한 김윤석을 만났다. 인터뷰 전엔 캐릭터의 강렬함 때문에 살짝 무섭기까지 했던 김윤석은 영화 이야기를 하며, 1987년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쏟을 정도로 뜨거운 사람이었다.


Q. 영화 <1987> 잘 봤다. 보는 동안 마음이 울컥울컥했다. 출연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A. 출연결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감독과 워낙 친해서 초고부터 시나리오를 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런 배역이 주역이고 이걸 했으면 좋겠다"고 감독이 이야기 했다. 제일 먼저 신경쓰인건 이 사건이 실화인데다가 87년도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건인데 완성도를 얼마나 할수 있겠냐였다. 유족도 계신 상황인데 다큐보다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예의에 어긋난거다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볼 때 감독은 초고부터 완성본까지 모든 자료를 뒤지고 검색하고 찾아다니고, 인맥을 동원해서 발품 찾아 준비하며 정말 최선을 다 했다고 본다. 올해가 박종철 열사의 30주기였다. 박종철 열사는 내 고등학교 2년 선배이기도 하다. 당시의 동기분들이 주최하는 행사가 부산에서 열려서 그 행사에 감독님과 같이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가족분들이 다 오셨는데 거기서 누님을 만나뵙고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영화로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유가족들에게도 허락을 구한 뒤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유가족들은 잘 만들어 달라고 하셨고, 제가 가장 강력한 악역을 한다고, 제가 이 역을 해야만 이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악역에 대한 부담보다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장미대선이 결정되기 전에 작품을 준비했었다. 누가 투자하겠냐는 걱정은 했었다. 솔직히 이야기 하면 가장 첫번째가 완성도에 대한 걱정 두번째는 투자, 세번째는 정치적인 이슈였다. 그런데 별로 실감이 안 났었다. 이 이야기를 만약 디스 한다면 그건 자기 비하 아닌가 이런 이야기까지 우리끼리 했었다. 정치적 이슈에 대해 피부로 느끼는 부담은 적었었다.

Q. 유가족들은 완성된 영화를 보셨나? 그분들의 평가는 어땠나?
A. 박종철 열사 가족들이 영화를 보셨다. 합격 받았다. 일단은 다른 평가보다 너무 기분이 좋았고 감사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같이 감독님과 옆에서 봤는데, 수고하셨다고 손을 잡아 드렸다.

Q. 감독님이 그렇게 많이 우신 언론시사회는 처음이었다.
A. 감독님은 처음 모일때부터 울었다. 어제부터 터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영화도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대단한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것 같다. 30년 전 사건이고, 함께 대학 생활을 보냈는데 그들은 그 나이에 멈춰 있고,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부분이 감독님을 계속 눈물흘리게 만든 영화같다. 아휴.. 언론시사때 정말 생쑈를 했다. 다 같이 영화를 보는데 하나둘씩 얼마나 우는지... 사실 촬영할때도 울지 않았었다. 정말 치열하게 찍었는데, 완성된 걸 보니까 확 밀려오더라.


Q. 연기 하시면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쓰신 건 어떤 것인가?
A. 연기를 잘하고 빛나게 하자는것 보다 상징하는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게 컸다. 인물들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것들이 있었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Q. 이번에 연기했던 박처장 역시 자신의 신념을 믿고 행동했던 인물인가?
A. 그렇진 않다. 영화 속에 대사로도 나오는데 "두 사냥개 중 누가 가마솥에 들어가는지 보자"고 했던 것 처럼 박처장은 본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본다. 신념 보다는 권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권력에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개인의 비극적인 가족사도 사실일까 거짓일까? 생각해 보면 한병용을 설득하기 위한 거짓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독님은 사실인것 처럼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당근과 채찍이라고 본다.

Q. 극중에서 북한 사투리를 쓰셨다. 영화 <황해>에서도 북한사투리를 쓴거 같은데... 너무 리얼해서 지금 표준어 쓰시는게 신기할 정도다.
A. 그때는 함경도쪽과 가까웠다. 이번에는 평안도 사투리를 직접 사사 받았다. 녹음해서 들으면서 공부했다. 사투리를 가르쳐 주신분은 평안도 출신 지식인이셨고 "아바이 오마니 이런 말 안씁니다."라고 하셨다. 억양만 다르고 연음 법칙 외에는 오히려 발음이 정확한 편이었다. 오로지 연습 밖에 방법이 없었다.


Q. 정말 잊을 수 없는 '탁 치니까 억하더라'였다. 당시 뉴스를 보고도 저게 뭐야 했었는데, 그 대목을 연기하는 건 이상했을 것 같다.

A. 그 대사는 그 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다. 당시 모든 뉴스들의 헤드라인이 그렇게 써 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이 없어 했었나. 그런데 막상 그 장면을 찍을때는 너무 웃기더라. 예고편에 나왔던 어? 라는 추임새도 즉흥으로 나왔다. 자기가 해도 말이 안되는 말이어서 강압적으로 어? 이렇게 나가는 추임새가 나오더라.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가 않더라. 그래서 다들 뒤집어지게 웃었다. 당시의 기자회견 장면도 고증을 받아 찍었고 놀라웠던 건 당시에 실내에서 담배를 많이 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건 공무원들이건 다들 실내에서 어찌나 담배를 많이 피든지...


Q. 촬영 당시의 또 다른 에피소드는 없는지?
A. 캐릭터를 위해서 나는 마우스 피스를 끼고, 이마를 M자로 더 파고 실제 거구라고 해서 몸통을 앞뒤로 더 키웠었다. 살도 더 찌워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테니스 치는 장면은 대학때 쳐보고 이번에 처음 친건데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 원테이크로 찍기 위해 한 50번쯤 테이크를 갔었다. 아마추어 선수분이 함께 연기 했는데 그 씬 찍고 다들 녹초가 되었다. 테니스 채 놓고 전화 수화기를 잡으러 가는데 손 아귀가 잘 안잡히더라.

Q. 영화에서 악역만 주로 하신다.
A. 악역의 새 역사를 계속 써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어떤 악역일까 궁금해도 하는데 피하고 싶지는 않다.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매력이되서 하게 된다. 장준환 감독과 또 작품을 한다면 과연 내가 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웃음)

Q. 여진구와 <화이> 이후 4년만에 다시 만나셨다. 소감이 남다르셨을 것 같다.
A. 여진구와 현장에서 보지는 못했다. 부산사람 설정이라 사투리가 필요해서 녹음을 해줬다. "정말 모릅니다."라는 대사인데 부산 사람들은 "정말"이라 안쓰고 "진짜"라고 한다. 그런 것들에 대한 팁을 줬다. 여진구가 이번에 한 역할이 사실 엄청 부담스러운 역할이다. <화이>때가 여진구 중3때여쓴데, 지금은 너무나 완성된 남자의 모습이더라. 의미있는 작품을 흔쾌히 해냈다는 게 믿음직 스럽고 고맙더라. 지금의 여진구는 이제 술도 마셔도 될 나이인데, 체력을 보니까 소주 10병 먹어도 안취할 것 같더라. (웃음)

Q. 하정우와도 같이 작품을 했던 인연이 있었다.
A. 우스개처럼 하는 말로 3학년때 만났다가 4학년이 된 정우를 만난건데.. 정말 무르익어가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같이 연기하면 재미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준비없이 만나서 즉흥적으로 주고 받을때 나오는 시너지도 있고 그렇다. 이번에 개봉 시기가 맞물리면서 하정우가 <신과 함께>를 홍보하고 있는데 나는 <1987>도 함께 홍보하라고 했다. 요즘 멘트들이 <1987>쪽으로 많이 기운것 같더라. 본인도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다.


Q. 이번 영화에 같이 한 배우들은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했다고?

A. 먼저 하겠다고 온 배우들이 더 많았다. 심지어 마감되었다고 알릴 정도였다. 분량에 관계없이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흔쾌히 와준 좋은 배우들이 많아서 너무 고마웠다. 조우진도그렇고 유승목도 그렇고 막차 탄게 오달수였다. 문소리씨도 엔딩씬에서 목소리로 참여했고, 김태리와 보조출연자들에게도 구호 외치면서 손목 꺽는 것도 가르쳐주고 그랬다. 감독님의 딸도 수퍼에 50원 모자라게 돈 내는 아기로 등장했다.

Q. 희망하는 관객수가 있으신가?
A. 1,987만 정도만 들었으면 좋겠다. 2,017만명은 바라지 않는다.

Q. 올해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택시운전사>도 그렇고 <군함도>도 그랬고 민초들이 들고 일어서서 세상을 바꾸는 소재가 유독 많이 보였다.
A. 인위적인게 아니다. 문화라는 게 누군가 이야기 하는데 또 이야기하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건데 현실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촛불시위때 광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60항쟁때 연세대 앞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의 교집합이 있는 것 같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지만 모이고 모여서 밝은 걸 찾아내고 하는 것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래서 올해 그런 영화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다. 누가 광장에서 오라고 해서 모인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나와진것 같은 현상이 아니겠냐.

Q. 올해 하신 일 중에 가장 뿌듯한 건 무엇인가?
A. <1987>영화를 찍은게 올해 한 가장 뿌듯한 일중의 하나인것 같다. 2017년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마도 올해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실테고, 2018년도에 보게되는 관객들은 내년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실거다. 나도 개봉하면 두 딸을 데리고 가족들과 다시 보려고 한다. 꼭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인데, 아빠가 배우인 것도 알고 있어서 이런 악역을 맡았고, 이런 시대가 있었음을 엄마가 잘 설명해주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지난 겨울에 촛불들고 광장에 아이들 손잡고 가셨던 분들은 다 아이들 데리고 가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기 위해 어른들이 도와야 하고, 그래도 되는 시대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바램이 있다면?
A.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웃음)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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