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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잘생김이 숙명인 남자 정우성

기사입력2017-12-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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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의 관객수가 100만을 넘어 섰다. 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며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강철비>. 평양 출신 특수요원으로 변신해 새로운 의미의 멋짐을 보여준 정우성을 만났다.


Q.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A. 양우석 감독님과는 변호인 때문에 알게 되었다. 변호인 시나리오에 대해 깊은 의견 교환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영화 하는 사람들, 특히 저같이 일리 좀 많은 사람은 작품 외에는 따로 시간 내서 만나기는 어려운데 양감독님이 <강철비>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시나리오가 정우성을 끌어들이는 아우라가 있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있을 법한 일, 시의성도 적절하고. 북에서도 계속 핵 실험을 하고 있고. 두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새로웠고 북한 캐릭터의 경우 장르적 특성으로 이용하려는 의지보다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 살아남으려고 하는 인간을 보여주려는 모습이었다.

Q. 이번 영화의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어떤 것인가?
A. 가장 큰 도전은 사투리였다. 첫번째 넘어야 될 산이었다. 가뜩이나 위장간첩으로 내려온 설정도 아니어서 실제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고, '잘생긴 정우성이 북한 사람이냐, 현실적인 캐스팅을 해라.' 이런 말들에 깔려 있는 선입견을 깨야 했다. 시나리오는 재미있고 캐릭터는 새로 와서 선택했는데 어느 정도 완성도를 만들어 낼 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했다. 완벽한 평양사투리를 구사하는 것, 그게 가장 큰 과제였다. 지금까지 영화들에서 사투리는 적정 수준으로 타협하는 것 같더라. 사전에 북한 다큐를 많이 봤는데 실제 사투리는 붙여 말하고 스피드가 빠르더라. 관객이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좀 풀어서 구현해왔다면 나는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사투리를 쓰려고 많이 노력했다. 현장에서 스탭들이 '말을 알아들을까요?' 라는 말을 하긴 했었다.
그 이후에는 병 때문에 마르는 설정이라 살을 빼야 했고, 마른 상태에서 고난이도 액션 하는게 체력적으로 휘둘리기도 했다.

Q. 곽도원씨와 역할이 바뀌었으면 어땠을 것 같나?

A. 역할이 바뀌었더라면 곽도원이 북측 1호를 해서 계속 누워있어야 했을 것... (웃음) 텍스트로 본다면 곽철우가 할게 더 많았다. 재미있는 게 있기는 했다. 엄철우는 대본상에서는 여백을 채워야 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곽철우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Q. 곽도원 배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언론시사 때 이야기 했었는데?

A. 도원이가 진짜로 나를 사랑한다. 배우로 동료로의 신뢰는 화면에 담긴 것과 같다. 개인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의 호감 이런 건 또 다른 모습이 있을 텐데 동료 친구로의 호감과 신뢰가 두 철우의 케미로 잘 맞물렸다. 곽도원은 사랑스럽다. 애교가 얼마나 많은데~ 전쟁 이야기 하다가 "전쟁 나면 죽지 마" 그러길래 "넌 제주도 가 있어, 서울은 아마도 힘들 거야" 그랬더니 "너 죽으면 나 따라 죽을래" 이러더라. (웃음)


Q. 곽도원 배우가 정우성의 눈빛이 너무 슬프고 아름답다고 하더라.
A. 평소에 느낀 이미지 같다. 내 눈 안에서 자기의 슬펐던 자화상을 본 게 아닐까? 도원이도 밀양에서 연극하고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고생했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밖에 나와서 혼자 살아온 그런 비슷한 과거사에 있어서 외로움을 봤기 때문에 자기가 갖고 있는게 있어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도원이 나한테도 그런 말을 하던데 나는 "그치? 내 눈 슬프지?" 그랬다.

Q. 국수집에서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A. 우연이 만들어낸 절묘한 명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도원이가 왼손잡이라서 가능했던 장면이다. 마케팅팀에서는 그걸 먹방이라고 홍보를 했는데, '같은 편이다' 하면서 수갑을 풀고 서로의 간격이 좁아지는 장면에서 둘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수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한반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Q. 철우가 차 안에서 '삐딱하게' 노래 부르는 장면을 찍을 때는 어땠나?
A. 엄철우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한심해 보였다. 원래는 '판타스틱 베이비'를 하려고 했는데 그 노래는 곽도원이 모른다고 해서 '삐딱하게'를 하게 됐다. 합을 맞추고 연기한 게 아니라 곽철우가 엄청 한심해 보였다. (웃음)


Q. 양우석 감독님은 어떤 스타일이셨나?

A. 지식, 사실, 서술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워낙 확고 하시다. 하지만 배우들의 감성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믿고 맡겼다. 스탭들에게 특히 기술 스탭이 구현하는 기술에 대해서 전적으로 믿고 포용해 주셨다.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확고함을 현장에서도 고집으로 끌고 가는 타입은 아니더라.


Q.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은 특이했다. 짧게 끊어 치는 느낌도 강했고. 현장에서 이 액션을 뭐라고 불렀나? 액션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A. 실존 액션? (웃음) 나는 메디컬 액션이라고 불렀다. 산부인과, 성형외과, 국군 병원 등 전부 다 병원에서 하는 액션이다. 실제로는 조우진을 안 다치게 하려고 많이 조심했다. 몸을 다부지게 트레이닝 해오고 준비 많이 해왔지만 실제로 배우끼리 붙어서 할 때는 달라진다. 스피드도 연습할 때랑 달라지고 힘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부상이 생기기 때문에 부상 안 입히고 부상당하지 않으려고 많이 신경 썼다. 엄철우가 계속 살이 빠지니까 실질적인 체력도 저하된 상태에서 육체적으로 고된 액션이었다.

Q. 촬영 당시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었는지?

A. 개성공단 장면은 대구에서 촬영하였었는데 당시 박사모가 그 앞을 점거하고 있었다. 촬영 팀들은 전날부터 본 촬영을 시작했고 마이크에 대고 함성을 질러서 촬영하기 힘들었다고 했는데 제가 간 날 난리가 났었다. 우리 촬영 기간 내내 집회 신청을 해 놨다고 해서 걱정 했었는데 갑자기 갑자기 결심 공판 뉴스가 다면서 다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래서 촬영을 편하게 했다. 개성공단 장면이 CG로 처리될 예정이었고, 스틸 레인이라는 게 어떤 로켓탄이고 어떤 원리로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적인 부분은 다 상상했어야 했다. 환타지적인 캐릭터라면 더 극대화된 표현을 하겠는데, 바람은 춥고 앞에서 진짜 다 사람들이 죽으면 어떨까, 어떤 감정도 안 나올 수 있겠구나 부터 많은 상상을 하며 막연하게 연기했었다.

Q. 영화 연출에 대한 의지가 있는데 작품 소식은 언제쯤?
A. 이제 장편영화 할거다.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겠냐? 50살이 되기 전에 해야죠. 지금 몇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뭘 손에 쥐어야 할지는 하기 직전에 선택할 것이다.


Q. 모든 배우들이 '정우성'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최근 잘생겼다는 말에 대해서도 약간은 본인이 희화 해서 답변하는 분위기인 한데,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정말 솔직한 심경은 어떠한가?

A. 고맙다. 배우들의 워너비가 된다는 건. 나의 젊은 시절이 사람들의 워너비가 되는 그런 배우였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런데 나처럼 되고 싶다던 후배들은 '그'가 되어 있다. 정말 나처럼 되는 것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개성과 노력이 담긴 '그'가 되었고, 그런 후배들과 같이 만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저는 20세기의 배우고, 곽도원은 21세기의 배우, 따지고 보면 까마득한 후배 배우인데 요즘 선배랑 맞 술도 하고 반말도 하더라. (웃음)

Q. 젊을 때를 생각하면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느낌이 들 것 같다.
A. 나이 먹는 건 좋은 거 같다. 이왕 먹는 거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로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게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걸 갖춰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은데 삶은 나를 찾는 여정, 내꺼를 찾는 여정이라고 본다. 어떤 정우성이 될지에 대한 미지의 여행이다. 예를 들어 중년의 남자로 보거나 사회적인 책임의 기준으로 볼 때 '나이 어린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했던 기성세대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책임을 보여준 기성세대가 될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Q. 뉴스에 난민기구 관련해서 출연하신다고? 사회 참여 활동을 꾸준히 하시나 보다.
A. 사회 참여는 어릴 때 부터 생각했다. 어릴 때는 재단을 만들겠다는 식으로 오히려 거창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난민기구에서 찾아왔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빨리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했으니까. UN 난민 기구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해보니까 정말 큰 문제더라. 가난한 국가의 빈곤은 해결할 수 있지만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난민촌에도 한류가 있다. 그들에게 한국 사람으로 가서 일한다면 그들이 재건되었을 때 한국에 호감을 가질 것이다.

Q. 결혼은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
A. 나이가 드니까 점점 어려워진다. 쉽지 않고 복잡해진다. 가정을 이루고 싶은 생각은 있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28살에는 장가갈 거야' 했는데 생각은 생각일 뿐이구나 싶다. 지금도 빨리 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생각처럼 되는 일은 아닌 거 같다......

Q. 올 한해는 어땠으며 내년 계획은 있으신지?
A. 올해 아쉬운 부분 없다. 내년 일은 내년에...... 뭐든 닥치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나이 드니까 귀찮은 건 별로 없고 해야 할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더 깊이 해보고 싶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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