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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人스타] 코미디 이미지 벗어 던지고 메시지 담은 이야기를 들고 돌아온 장항준 감독

한국영화홈페이지 2017-12-10 14:00
[人스타] 코미디 이미지 벗어 던지고 메시지 담은 이야기를 들고 돌아온 장항준 감독
영화 <기억의 밤>으로 오랜만에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장항준 감독을 만났다.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와 동시에 대박 감독이 되었던 장항준 감독은 <불어라 봄바람> 이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 특별출연으로 작품보다 연기를 선보이고 <위기일발 풍년빌라> <싸인> <드라마의 제왕>등의 드라마 각본도 쓰며 간간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담을 선보여 왔다. 비록 연출을 하지 않아도 장항준 감독이 썼던 대본들을 통해 대단한 스토리 텔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억의 밤>으로 증명해 보인 그의 능력은 ‘역시나!’였다.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장항준 감독은 예능감으로 포장된 ‘투머치 토커’가 아니라 진정한 이야기꾼이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놀라운 관찰력으로 영화의 배경과 자신의 소신을 설명해 주는, 정말 욕심 많고 친절한 설명 꾼이자 이야기꾼이었다.
*12월 1일에 진행되었던 인터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 때문에 다소 늦게 공개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Q. 영화가 개봉했고,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모니터 해 보셨나?

A. 영화에 대한 반응은 뭐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싫어하시는 분도 있는데 다행인건 그래도 일반관객들이 좀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떤 점이 너무 별이로다 혹은 어떤 점이 어떻다 하는 평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더라. 왜냐면 촬영할 때 또 편집하면서 마지막까지 ‘좀 더 할 걸~’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기 때문이다.

Q. 관객의 평 중에서 어떤 부분이 공감되시나?
A. ‘설명적이다’, ‘사족이다’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 사족이라고 하시는 건 아마도 에필로그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 설명적이라는 평에 대해서는 그런 건 제 성격 탓인 것 같다. 제 성격은 이유나 배경에 대해 잘 이야기 해주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영화에서도 보여지는 것 같다.

Q. 혹시 관객들의 평을 보시고 설명해주고 싶다고 생각되신 부분이 있으신가?
A. 많은 분들이 ‘초 중반까지 있었던 장르적인걸 끝까지 밀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시는데 그건 제가 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관객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나도 알고 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태생적으로 장르적 배신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었다. 왜냐면 장르가 저의 목표가 아니었다. 정말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뒷 부분이었다. 둘 중의 하나를 버리라고 한다면 저는 스릴러를 버렸을 것이다.


Q. 뒷부분, IMF시절을 겪은 인물들의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 하시고 싶으셨나?

A.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영화의 시작에서 두 형제가 나오고 형제를 둘러싼 단란한 가족이 나오는데, 사실 그 가족은 없는 가족, 가짜 가족이다. 그렇다면 그 형제들의 진짜 가족은 어디 있는가? 이 영화에는 가족이 많이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가족이 없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의 가족 이야기. 이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을 상실해서다. 형 유석이건 동생 진석이건 둘 다 가족의 결핍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었고 관객들도 그들의 심정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Q. 그러고 보니 정말 등장인물들이 모두 가족이 없는 사람들의 설정이다. 그렇지만 왜 IMF가 배경인가?
A. 가족에 대한 상실을 표현하기 적당한 과거 90년데 어디론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그건 당연히 중산층이 붕괴되고 가족의 해체가 급격히 시작된 1997년, IMF시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신문이나 매체의 뉴스들이 다 비극적인 소식만 전했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단어도 생겨났고 돈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많은 풍경들이 매일 같이 뉴스를 채웠었다. 가족 해체뿐만이 아니라. 이민을 하고 떨어져 살고 이혼을 하고…… 가난하더라도 노력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시절이었고 그런 꿈을 꾸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 당시의 한국 사회였는데 그게 송두리째 사라진 사건이 바로 IMF다. 그 이전까지는 대학이 인생을 보장해 줄 수 있었기에 대학에서 낭만을 즐길 수 있었지만 IMF 이후 급속히 문화가 바뀌기 시작해서 대량 실업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고 계층간의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벌어지고, 지금의 헬 조선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시대가 굉장히 중요했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버리라면 장르를 버리려고 할 정도로 이 시대에 대해 잊혀지지 않게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Q. IMF를 겪어온 세대이면서도 사실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불행한 두 청년의 공통된 과거사가 IMF시대였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감독님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제가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이렇게 현대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시는 모습에 놀라는 제 모습이 죄송하다.
A. (웃음) 뭐 데뷔도 코미디 영화로 했었고, 예능에서 보여지는 성격이 가볍게 보여서 그런 거 겠지.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 나도 학생 때 운동도 하고, 인문사회학 공부도 했고, 동인지 활동도 했었다. 학창시절 같이 글 쓰는 동인지 친구들과 술 먹으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당시에 친구들이 물었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려고?” 젊었을 때 나는 “우리 사회에 이율배반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 거야”라고 했었다. 그게 저의 최소한의 양심이고 마지노 선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다시 봐도 괜찮은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접속> 같은, <접속>이 IMF즈음에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Q. 감독님의 IMF시절은 어떠했나? 혹시 특별한 상처가 있으셨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

A. 당시의 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이후 촉망 받는 시절이었다. 첫 작품이 히트하고, 98년 4월에 결혼을 했었다. 미국에 있던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내 영화가 히트한 후 자랑스런 동문으로 방문을 해 달라고 샌프란시스코에 초청을 해줬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촉망 받는 영화인이었어도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아서 비자 발급이 되지 않더라. 그래서 미국엘 가지 못했다.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지고 추웠지만 한편으로는 신혼이라 재미있었다. 둔해서 그런지 ‘젊은 시나리오 작가이고,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도 했고, 전세집도 있었고, 이불 덮고 꼭 안고 자면 얼어 죽을 정도의 추운 나라는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나는 당시를 그렇게 보냈지만 주변의 상황은 많이 삭막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지 않으신다는 친구도 있었고, 부도가 나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식구들에게 미안하다거나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히 상황이 나빠지고, 미안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는 상황들이 당시에 생겨났었다.

Q. <기억의 밤>은 집에 가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 두 형제의 반전이 스릴러적인 반전을 넘어서 인간적인 공감이 되고, 그래서 참 안쓰러운 인물들이더라. 이런 영화도 잘 만드시면서 왜 그 동안 코미디 영화를 하셨었나?
A. VIP시사회 후 뒷풀이때 <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저한테 ‘너 그 동안 코미디를 왜 만든 거냐?’라고 하던데. (웃음) 다음 번에도 스릴러를 하고 싶다. 아직 장르적인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어떤 때는 해산물을 즐겨 찾고, 어떤 때는 육고기를 즐겨 찾을 때가 있지 않느냐. 스릴러가 해산물이라면 아직은 해산물에 물리지 않았고, 다음엔 누구랑 같이 먹고, 어떤 해산물을 메인으로 해서 먹을 것인가 달라질 뿐 여전히 해산물을 먹고 싶은 때다. 만약에 다시 작품을 하게 되면 올곧이 장르적으로 충실히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 안에 넣고 싶다.

Q. 스릴러가 왜 하고 싶으신 건가?
A. 왜 좋은지 모르겠다. (웃음) 오랫동안 코미디를 했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 스릴러가 좋아지더라. 영화 하는 사람들은 좋건 싫건, 잘 만들건 못 만들건 채플린의 후예이자 히치콕의 후예 아니냐. 그 둘의 피가 누구에게나 흐르는데 전에는 채플린의 피가 끓었다면 지금은 히치콕의 피가 끓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취향이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더라. 배우 중에서 류승범, 차승원, 유해진, 송광호 모두 코미디에서 일각을 이뤘던 배우들이고 그게 특장점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나중에 장르적으로 변신을 하고 연기에도 변화를 주더라. 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김지훈 감독도 <반칙왕> 등 출중한 코미디를 만드는 분이셨다. 제가 감히 그분들만큼 그렇다는 건 아닌데, 젊었을 때에는 재기 발랄함이 즐거운 시절이 있었고 나이가 드니까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더라. 사람 마음의 바닥, 호기심, 욕망, 두려움에 대해 자꾸 관심이 가고 생각이 나더라. 아마도 나이 탓이 아닐까? .

Q. 드라마 대본을 써보셨던 분이어서 인지 이번 영화에서도 구성이 뛰어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도록 스토리를 배치하셔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16부작 미니시리즈로 풀어서 만들어도 될 만큼 구성이 재미있고 톤도 조금씩 변화되더라.
A. 처음부터 영화는 세가지 단계로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의문의 극단까지 치닫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이 모든 일들의 이유가 두 번째 단계에서 나온다. 김무열이 왜 이런 상황이 된 건지를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세 번째 단계가 비로소 주인공인 진석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었다. 김무열에 설명이 두 번째 부분에도 나오긴 하지만 비극이 시작된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배치되는 것으로 이렇게 세 단락으로 나눠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 제가 베테랑이었으면 단락을 나누지 않고 능수 능란하게 스토리 안에서 녹여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최대한 매끄럽게 넘어가려고 노력은 했다.


Q. 감독님이 대본 쓰셨던 <싸인>이라는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건 진짜 이야기꾼이신 것 같다.

A. <싸인>은 드라마의 아이템을 제가 기획하고, 김은희 작가도 제가 붙여서 만들었던 작품이다. 그때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장르였고, 가치 있는 이야기이자 가치 있는 도전, 가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가슴이 설렜었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걸 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런 걸 충족시켜줬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장르 물들이 너무 쏠려 있더라. 많아도 너무 많다.

Q. <기억의 밤> 관객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넷플릭스와 계약되었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A. 영화로 만들기 전 시나리오만 보고 계약됐다. 시나리오만 보고 계약된 건 최초라고 하더라. 국내 극장 개봉 다 하고 우리나라 영화로 극장 외에 각종 매체를 다 거친 후 내년에 전세계에 공개 된다고 하는데 정확한 일정은 모르겠다.

Q. 혹시 이번 영화 이후에 예능 프로그램 또는 연예계 활동을 하시면 예전의 개그 감 있는 이미지를 바꿔서 진지한 모습으로 나오시려나?
A. 사실 그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던 건 다 주변의 엄중한 부탁을 받고 나갔었다. 뿌리칠 수 없는 부탁에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나갔던 거다. 그런데 또 내 성격에 일단 가면 열심히 한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적인 심정으로 열심히 하지만 좋아서 출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또 누군가가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할 수도 있고, 서로 돕고 살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나가겠지만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웃음)

Q. 이번 영화를 통해 저는 감독님에 대해 다시 알게 돼서 참 좋았다. 저처럼 생각하는 관객들도 꽤 많이 있을 텐데, 감독님은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는 영화인이고 싶으신가?
A. “집에 갔는데 생각난다.” “10년 지났는데 얼마 전에 케이블에서 한걸 다시 봤는데도 재미있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혹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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