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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스크리닝] 추리보다는 기차칸 비주얼에 매료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클래식한 시대극 <오리엔트 특급살인> ★★★

기사입력2017-11-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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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이스탄불에서 여러 도시를 거쳐 런던으로 향하는, 유럽을 횡단하는 초호화 열차에 올라탄다. 폭설로 열차가 멈춰선 날, 갑자기 이 초호화 열차 안에서는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차 안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열차의 침대칸에는 13명의 용의자가 있지만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포와로는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함께 용의자들을 한명 한명 면담하기 시작한다. 국적도, 직업도, 나이와 계급도 모두 다른 13명의 용의자 중 살인자는 과연 누구일까?



▶비포 스크리닝
아가서 크리스티(1890-1976)는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 추리 소설을 대표하는 추리 작가다.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생된 탐정 캐릭터와 독자를 미스터리의 세계로 초대하는 정밀한 사건들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추리물이다. 그녀가 쓴 80여 편의 추리소설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40억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 영화의 원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미 앨버트 피니, 로런 버콜, 숀 코너리,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으로 1974년 영화화 된 바 있다. 무엇보다 밀실에서의 살인사건, 그것도 배경이 기차칸인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극은 이미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추리 만화 등에서 충분히 변주되었다.

일단 40년이 흘러서 재탄생한 영화 <오리엔트 살인사건>을 눈여겨 봐야 할 이유는 화려한 '배우'때문일 것이다.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조시 게드, 데이지 리들리,윌렘 대포 등 할리우드 멀티 캐스팅이라고 할만한 쟁쟁한 배우들이 눈에 띈다. 특히 눈에 띄는 배우는 세르게이 폴루닌이다. 4월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세르게이 폴루닌은 19살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에 발탁된 천재 무용수이기도 하다. <댄서> 출연 후 그의 극 영화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가 영화 배우로 출연한 대작 영화를 한국 관객들은 처음 만나는 것. 세르게이 폴루닌은 극중에서도 유명한 댄서이자 헝가리 외교관이자 백작으로 출연하며 그의 아내인 백작부인은 <싱 스크리트>에서 어린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루피나를 연기했던 루시 보인턴이 맡았다. 영화는 에르큘 포와로 역할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했으며, 시대극의 풍광을 재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 4대만 남은 6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됐다.



▶애프터 스크리닝
에르큘 포와로는 추리 소설 팬들에게는 가장 사랑받는 탐정 캐릭터다. 좌우의 완벽한 대칭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하고 균형감이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을 알아보는 관찰력과 기억력 덕분에 최고의 탐정이라는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괴팍하지만 정의로운 포와로, 사실 그 이후에 탄생된 수많은 탐정 캐릭터는 일정 부분 에르큘 포와로에 빚진 부분이 많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사실 13명의 용의자 역할에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이 필요했나 의문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램 대포 등 용의자를 연기하는 배우 중 아카데미를 수상했거나 후보에 올랐던 배우만 6명이다.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들 모두에게 아무리 고른 역할이 배분되었다고 해도 결국은 탐정의 유능함을 설명하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한 캐릭터들. 특히 주디 덴치와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그 이름이 무색하게 매우 작은 비중이고 그마저도 특색없이 소모된다. 혹시 영화는 궁금한데 조니 뎁이 싫어서 관람을 망설이는 관객이라면 그의 비중 역시 크지 않으니 걱정은 접어두어도 되겠다.



관객이 추리에 동참하는 재미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한 영화다. 포와로가 사건을 해결하는 첫 공간으로 예루살렘을 제시하고 부감으로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퀀스만 봐도 이 영화가 공간감과 이국적인 풍경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934년의 호회 유럽 횡단 기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 기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차칸에서 쓰는 식기류와 레스토랑 칸의 조명과 음식, 인물들이 모이는 기차의 공간들은 여느 고급 호텔보다도 더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재현되었다. 기차칸의 모든 세트와 소품이 그야말로 '럭셔리 빈티지'의 정수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기차가 산속 한가운데게 멈춰서고 덕분에 눈이 시원한 설경과 아슬아슬한 산 위에 매달린 기차의 풍경도 볼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사건은 사실 살인의 잔혹함보다는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과 얽히고 얽히는 관계, 완벽한 모두의 알리바이가 하나의 반전으로 역전되는 재미에 있다. 이 사건의 잔혹함이나 클래식한 추리 과정이 21세기 '넷플릭스' 세대에게 '추리극'으로서 손에 땀을 쥐는 재미를 줄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 관객들은 이미 이 비슷한 변주의 사건을 충분히 봐오지 않았나. 추리보다는 미술과 의상, 세트 등과 같은 비주얼에 더 힘을 쏟은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13명의 용의자는 모두 영어를 쓰지만 각기 국적이 다르다. 포와로가 벨기에식 영어를 쓴다면 게르하르트 하드만(윌렘 대포)는 독일식 영어를, 드라고미로프 공작부인(주디 덴치)은 러시아식 영어를, 마르케스는 이탈리아식 영어를 구사한다. 국적과 출신이 모두 다른 인물들의 악센트 연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재미있는 영화라 영어 능력자들이라면 120% 즐길 거리가 많을 것이다.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는 "이국적인 장소에서 거대하고 미스터리한 도시에 포와로가 서 있는 장면, 풍광 속에서 그가 추리하는 모습을 시각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관객에게는 추리의 단서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추리보다는 비주얼을 충분히 즐기는 것에 중점을 두자. 우리가 언제 또 1934년의 호화 기차칸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11월 29일 개봉한다.



iMBC 김송희 | 사진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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