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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스타] 이병헌 ① "차분한 와중에 이렇게 뜨거운 영화는 없을 것 "

기사입력2017-10-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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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에서 이병헌은 치욕을 견디고 청나라와 화친을 도모하고자 하는 최명길 역으로 <광해> 이후 5년만에 사극 연기를 선보였다. <광해>에서 이병헌은 광대와 왕의 1인2역을 하는 팩션 사극으로 코믹과 진중함의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었다면 <남한산성>에서는 사실에 충실한 스토리에 한 인물의 고뇌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깊이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런 그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한산성에 갇힌 채 청의 대군에게 맞서지도 항복하지도 못하는 조선의 조정에서 진정 백성을 사랑한다면 어떤 치욕이라 할지라도 감수하고 청과 화친을 맺고 살아남은 후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최명길은 스스로를 '만고의 역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베어 청의 대군에게 들고가서라도 살아 남으라고 할 정도로 나라와 백성의 삶을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병헌은 이런 최명길의 고민을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목소리와 눈빛, 표정만으로 절절히 드러내며 연기내공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27년차 배우이지만 아직도 그는 젊고 여전히 전성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Q. 큰 액션도 없이 거의 대부분의 연기가 이야기를 하는 상반신 또는 얼굴 클로즈업으로만 보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명길의 고뇌와 생각의 깊이가 다 드러나더라. 연기 내공이 느껴졌다.
A. 아마도 감독님이 촬영을 순차적으로 하셨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된다. 장소별로 촬영 스케줄을 짜지 않으시고 서사 순서대로 스케줄을 짜서 촬영을 하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다. 그런게 배우에게는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시절, 그 47일 동안의 절박한 상황과 나의 책임감,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을 설득시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는 날들이었다. 순차적으로 촬영을 했었기에 감정이 계속 쌓여갔었고 그 상태에서 카메라를 뻗쳐 놓으면 그냥 배우의 얼굴에서 쌓인 감정들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굴만 보여줘도 관객에게 배우의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클로즈업의 장점이 바로 그런거다. 배우의 감정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좋은 장치다.

Q. 요즘 흔히 보는 스타일이나 내용의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를 직접 본 소감은 어떤지? 주변의 반응은 어떻던가?
A. 주변의 반응은 좋았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선택했고, 촬영이 끝나고 났을때 당연히 개인적인 만족도는 최고였지만 관객에게는 새롭게 느껴질수도 있고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기에 오픈되기 전까지는 불안하고 긴장됐었다. 그런데 주변의 감독, 배우, 후배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안도가 되었다.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정적으로 흘러갔지만 그런 정적인 와중에도 뜨거웠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이는 건 온통 눈밭에서 입김이 가득한 추운 느낌, 차가운 것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뜨거웠던 느낌이고 이보다 뜨거운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Q.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었나? 혹시 캐릭터를 만들면서 고민했던 것은 없었는지?

A. 따로 고민을 한건 없었다. 시나리오에서 워낙에 최명길이라는 인물이 입체화가 되어 있었고, 살아 있는 것 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믿음 하나로 갔었다. 실존인물, 실제했던 이야기를 연기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연기하려고 했다. 감독님도 엄격했다. 대사의 어미 하나가 틀려도 무전이 왔다. 다시 연기 해달라고. 시나리오에서 요구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왜곡되지 않게끔 하려고 신경은 썼다.


Q. 대사들이 참 인상적인데 특히 김상헌과 최명길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치열했다.
A. 긴 씬이었다. 가장 뜨겁게 두 사람의 소신이 부딪히는 장면이고. 김상헌은 평소에도 자신의 뜻을 직설적으로 밝히는 인물이지만 최명길은 항상 우회적으로 돌려 이야기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때 최명길이 처음으로 꼿꼿히 허리를 세운채로 자기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돌리지 않고 직접 하는 장면이었다. 대사가 입에 안맞아서 NG내지는 않게 하려고 대본 외우는 것은 많이 신경썼었다. 현장에서 연기 톤으로 고민을 할 지언정 다른 걸로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 뿐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였다. 인조 역할의 박해일이나 송영창 선배나 다들 신중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씬이 어떤 영화의 어떤 액션 보다 강렬하고 뜨겁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좋은 장면이 나올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Q. 두 분이 그 장면에서 나누는 대사들이 참 명대사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계속 머리 속에 맴돌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말들이더라.
A. 원작 소설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워낙 완벽했다. 그래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코미디나 멜로가 와도 이 영화는 그 대사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Q.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 두 인물의 주장은 서로 달랐다. 개인적으로 누구의 주장에 더 마음이 끌렸나? 그보다 앞서 두 역할 중 선택이 가능했다면 어떤 인물을 선택했을 것 같은가?
A. 결정장애가 있는 편이라 인조와 비슷했을 것 같다. (웃음)
두 캐릭터 모두 끌렸다. 그들의 소신은 정반대의 길을 갔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가 먼저라거나 혹은 누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역할이 와도 했을 것이다.
원작 소설 '남한산성'의 골수팬이신 지인분은 나한테 "김상헌을 했어야지!"라고 하시고, 영화사분도 나한테 "최명길을 선택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더라.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어쩐지 내가 김상헌을 하는게 맞았었나 싶은 생각도 했다(웃음)
최명길이 왕에게 허리를 세우고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하는 부분에서의 대사가 "임금이 무엇입니까? 오랑케 가랑이를 지나서라도 백성을 살릴 수 있다면..."이라는 게 있는데 소신과 색깔을 떠나서 가장 인본주의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정치의 근본은 인간 아니겠나. 사람이 있기에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게 주제라고도 생각했다. 누가 옳고 그르고가 아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게 똑같은 소신과 생각인데도 어떤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말을 하면 역적이 되고 어떤 시대에는 영웅이 되는 것이 묘했다. 서글프기도 하고. 진리는 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이게 옳다고 생각되지만 미래에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란 소리를 들을수도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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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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