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의 하나가 바로 투수들이 던지는 놀랍게 빠른 공의 구속입니다. 어떠한 기구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것을 보면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 공을 때려 홈런을 치는 타자 또한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빠른 속도는 인간에겐 경이의 대상이자 향수 같은 것이 있다고 봅니다.
스피드, 즉 빠른 속도는 파워, 즉 힘과 함께 원시시대부터 생존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빠르고 강해야 짐승을 잡아먹는데 용이하고 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원초적인 생존의 필수 요소를 향한 우리의 잠재적인 향수가 스포츠에서 스피드와 파워에 열광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MLB 스카우트는 과연 어떤 원칙에 의해 투수의 구속을 따지고 분석하는지, 그리고 과연 절대치는 있는지를 현재 MLB의 평가 기준과 과거 우리 선수들의 예를 들면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특파원 시절 MLB 스카우트와 관계자들을 만나 투수의 구속에 따라 어떤 등급을 매기는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당시 90마일(145Km)을 넘게 던지는 선수는 A급, 95마일(153Km) 이상을 던지는 선수는 A+, 그리고 85마일(137Km)을 던지면 B, 80마일(129Km)이면 C급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하고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시카고 커브스 산하의 성민규 코치에 따르면 요즘은 투수들을 구속에 따라 구분할 때 2~8점의 점수를 부여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 방법은 구단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2~8점 중에 5점을 받는 선수가 평균적인 MLB 투수입니다. 5점 선수는 평균 구속이 89~91마일(143~147Km) 정도 되며, 간혹 최고 95마일도 찍는 투수들입니다.
3,4,5선발이나 좋은 중간계투, 그리고 간혹 마무리로도 뛸 수 있는 능력의 투수입니다. 구속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투수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점을 받는 선수는 일단 구속이 92~93마일(148~150Km) 정도 나와야 합니다. 물론 평균 구속입니다.
이 정도의 구속이라면 2,3선발 급에 강력한 셋업맨이나 수준급의 마무리로도 뛸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간혹 올스타에 뽑힐 능력이 있는 투수로 기대를 합니다.
7점으로 올라가면 평균 구속이 94~95마일(151~153Km) 정도나 나오는 투수입니다. 평균 구속이 이렇게 나오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정도의 투수라면 당연히 1,2선발 급이고 올스타에도 종종 뽑히는 투수입니다. 클리프 리 정도 되는 투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리도 사실 구속만으로는 7점이 쉽지 않고 종합평가가 필요합니다.) 한 팀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대단한 투수입니다. 7점을 받고 구원 투수로 뛰는 선수는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정도의 특급 마무리들입니다.
그리고 8점.
꿈의 점수라고 할 수 있는데 평균 구속이 96마일(155Km+) 이상 나오는 투수들입니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급으로 볼 수 있는데 필리스의 로이 할러데이 정도의 투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평균 구속이 조금 떨어지긴 했습니다.) 구속만 따지면 레즈의 아롤디스 채프먼 같은 투수도 8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필리스의 로테이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4선발까지가 모조리 7,8점대의 투수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8점을 받는 투수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밑으로 내려가 보면 4점을 받는 투수가 있습니다.
86~88마일(138~142Km)의 평균 구속을 보이는,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는 수준의 투수들입니다. 불펜이나 때로는 선발의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도 하고, 로스터에 자리가 없으면 마이너로 밀리는 그런 정도의 투수입니다.
그런데 마이너리그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가장 흔한 투수가 바로 2점을 받는 투수라고 합니다. 2점을 받으면 '평생 마이너리거' 라는 안타까운 꼬리표가 붙습니다. 리포트도 아주 짧게 쓰고 빅리그로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는 선수입니다. 단지 마이너리그의 운영을 위해 뛰는 그런 선수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2,3점을 받는 선수들에게 빅리그의 길은 멀고도 험한,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수의 숫자가 가장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코리언 빅리거들은 어떤 점수를 받았을까요?
이 점수제에 코리언 빅리거들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당시를 대입해보면 흥미롭습니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 평균 매 시즌 15승을 거뒀는데 18승까지 거뒀던 2001시즌이라면 7점을 받았을 것입니다. 당시 2선발로 뛰었고 올스타에 뽑혔던 박찬호는 팀 전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1,2선발 급의 7점짜리 선수로 평가될 만합니다. 당시 평균 구속도 94~95마일을 찍었습니다. 최고 구속은 빅리그에서 99마일(159Km)을 몇 차례 찍었고 쿠어스필드에서는 100마일(161Km)까지 나온 적도 있습니다.
94,95년 짧게 빅리그에서 뛰었을 당시 박찬호의 9이닝당 평균 삼진은 13.50개와 15.75개였습니다. 워낙 짧게 던졌으니 큰 의미는 없지만 그만큼 폭발력 있는 구위를 뽐냈습니다. 첫 풀타임 시즌인 1996년 9이닝당 K는 9.86개로 여전히 대단했습니다.
다저스는 기본적으로 구속을 보고 조성민이나 임선동 등 또래 최고의 투수들을 제치고 박찬호를 스카우트했습니다.
김병현도 전성기 시절이라면 구속은 6점이지만 팀 기여도와 종합 평가는 7점을 충분히 받을 만합니다. 초창기 시절 김병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1999년 김병현은 9이닝당 평균 삼진이 10.31개를 기록했고 2000년에는 무려 14.14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뒀습니다. 2001년에도 9이닝당 삼진이 10.38개였습니다. 언더스로에 가까운 투구폼으로 92~93마일을 쉽게 찍었고, 특히 공의 무브먼트는 당연히 8점을 받았을 것입니다.
서재응도 전성기 시절은 5점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팔꿈치 수술 이후 더는 강속구 투수는 아니었지만 9승을 거뒀던 2003년 서재응의 평균 구속은 89마일 정도로 간신히 5점대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제구력과 체인지업으로 무장한 그의 종합 평가는 충분히 5점을 받고도 남습니다. 서재응은 '빅리그 데뷔 후 102타자 연속 무 볼넷'이라는 1945년 이후 최고 기록을 보유한 투수입니다.
구속으로 보면 아쉬운 선수는 김선우입니다.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만 보면 김선우는 5점을 넘어 6점을 받을 수 있는 투수였습니다. 김선우는 메이저리그에서 6년간 한 시즌도 평균 구속이 90마일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97마일 이상이 나온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교한 제구력이나 다양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변화구가 부족했다는 것, 때론 타자와의 승부에서 과감하다 못해 다소 무모한 정면 승부가 많았던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중근은 평균 구속은 4,5점을 오가는 투수였습니다.
팬그래프스.컴에 따르면 2002년 봉중근의 평균 구속이 88.6마일, 2003년에는 89.8마일, 2004년에는 88.1마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왼손 투수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고 커브와 체인지업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2003년에는 6승2패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의 역할을 보면 4,5점 정도로 상당히 수준급의 빅리그 투수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속의 절대치는 있을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에 민기자는 표를 던지겠습니다.
빠른 구속은 최고의 투수로 가는데 대단히 큰 도움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평균 구속이 90마일은 넘어야 성공 가능성이 보이고 93마일이 넘으면 그 가능성이 아주 커지며, 96마일은 넘기는 평균 구속의 투수라면 실패하면 바보입니다. 그만큼 야구에서 최고의 무기는 강속구입니다.
그러나 강속구만으로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마이너리그에 가면 구속만으로는 5점, 6점대 투수는 대단히 많고 심지어는 7점대의 투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공만 던진다고 될 수 있는 것이 투수가 아닙니다.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구속이 가장 앞에 서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구력, 공의 움직임, 변화구 구사 능력 등입니다.
박찬호가 구속에서 발군이었다면 김병현은 공의 움직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서재응은 제구력과 변화구로 생존했습니다.
이 나머지 세 가지 요소도 모두 2~8점까지 스카우트가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수로 매길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정신력과 성격입니다. 위의 모든 요소들을 갖췄다 해도 정신력이 턱없이 약하면 투수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뛰어난 투수가 탄생합니다. 어느 정도 빠른 구속은 필수고, 빠를수록 유리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iMBC연예 스포츠 편집팀 | 민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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